"우수 과학자를 빨리 길러내 국가발전에 도움을 주는 게 과학고의 설립 취지 아닙니까."국가발전에 방점을 찍어 연설하듯 당당한 목소리로 주장하던 그의 목소리가 다음 문장을 말할 때는 갑자기 한 톤 낮아졌다.
"물론 인성 이런 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80%에 육박하던 과학고 조기졸업을 20%로 제한한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방침이 나온 뒤 모 과학고 교장과의 통화 내용이다.
이 교장은 "안 그래도 과학자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인 마당에 빨리 우수한 인재를 사회로 내보내야 한다. 애들이 공부를 잘해서 고2만 돼도 서울대ㆍKAISTㆍ포스텍 같은 유수의 대학에 척 합격하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라고 주장했다.
인성보다 성적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맨 얼굴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얻은 결과는 무엇인가. 성과 중심의 교육이 낳은 폐해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인재(人材)'들의 '인재(人災)'가 많았던 한 해다. 여자 동기생을 성추행한 고려대 의대생들이 있었고 장애인을 성폭행한 학생이 '봉사왕'으로 성균관대에 입학하기도 했다. 그 뒤에는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해서라도 자식의 앞길을 열어주려던 엄마가 있었고 학생의 잘못을 알면서도 추천서를 써준 교사가 있었다. 두 사례 모두 법적 처벌과 퇴학 처분을 받았지만 전국민 모두가 실종된 인성교육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통감해야 했던 일들이다.
국가발전이라는 것도 그렇다. 당초 과학고의 과도한 조기졸업 비율이 문제가 된 것은 과학고가 일반고와 달리 1~2학년 과정에는 국민공통기본교과를, 3학년 과정에는 심화학습 단계인 수학ㆍ과학계열의 전문교과를 편성ㆍ운영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즉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일반고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입시에 학생들이 힘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창의성과 실력을 겸비한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는 과학자를 배출하겠다는 걸까.
아무리 비료를 많이 준다고 해도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 역시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꿈꿀 시간을 돌려주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 교육계가 하루라도 빨리 졸업해야 할 것은 다름아닌 성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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