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출근하는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ㆍ관리하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단독 김순열 판사는 김모(52)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김씨는 2010년 11월 회사가 지정한 공사현장 식당, 속칭 '함바'에서 아침을 먹은 뒤 출근하기 위해 현장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해 허리를 다쳤다. 김씨는 '사업주가 지배·관리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공사현장에 가다 사고가 났으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공단에 요양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회사가 해당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강제하거나 지시한 사실이 없으며 근로자들은 자율적으로 (식당을) 이용했다"며 "공사현장에 도착해 출근부에 서명을 해야 출근이 확인되고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걸어서 출근하다가 사고가 난 점을 고려하면 함바식당에서 식사 이후 출근하는 과정을 사업주가 지배·관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 판례에 따르면 출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 산업재해 판정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법원 판단은 사고자의 신분과 상황에 따라 달랐다.
공무원의 경우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에서 출퇴근 사고를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법원 판결도 공무원에 대해서는 출퇴근 사고 산재를 인정하는 쪽이다. 그러나 공무원이 아닌 일반 근로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산재 판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외적으로 회사에서 제공하는 차량을 이용하다 사고가 난 경우, 자가 승용차 외 다른 대중교통수단이 없을 때, 회사에서 제공한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다 사고가 난 경우 등에만 업무상 재해 판단이 이뤄졌다.
이 때문에 형평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07년 대법원은 일반 근로자의 출퇴근길 교통사고에 대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13명 대법관 가운데 5명의 대법관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대 소수 의견을 냈다.
형평성 논란은 위헌 신청으로까지 이어졌다. 8월 서울행정법원 임광호 판사는 지난해 우면산 산사태 때 자가용으로 출근하다 부상을 당한 양모씨가 낸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받아들였다. 양씨는 당시 공무원과 일반 근로자의 재해 보상이 다른 것은 부당하다며 산재보상법 규정(제37조 제1항 제1호 다목)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해당 산재보상법 규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헌재 관계자는 "이 사건의 경우 사회적으로 관심 있는 사건이지만 어떤 선고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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