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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3월 4일] 드릴 십 신화와 R&D

심해 원유ㆍ가스 시추설비선인 드릴 십(Drill Ship)은 한척 값이 보통 7억달러 안팎의 초고가 선박이다. 어제 환율로 1조800억여원에 이른다. 9억달러가 넘는 것도 있다. 웬만한 중견그룹의 연간 매출액과 맞먹는 규모다. 값이 이렇게 비싼 것은 해수면 1만m 아래까지 파내려 가고 높은 파도 및 극지방의 혹한도 견뎌낼 수 있는 초심해ㆍ내빙 등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가가치, 즉 수익성이 아주 높다. 영업익 3년만에 10배 늘어 1조
이런 드릴 십 시장을 휩쓸고 있는 조선소가 삼성중공업이다.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4년간 전세계 드릴 십 발주량 44척 중 무려 29척을 수주했다. 시장점유율 66%. 말 그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삼성의 독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연구개발(R&D) 노력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릴 십 수요는 1980년대 말부터 시들해졌고 1990년대 말에는 아예 발주가 끊겨 잊혀진 배가 됐다. 심해유전 개발에 막대한 투자비가 드는 탓이었다. 시장이 꽁꽁 얼어붙자 대부분의 조선소들은 기술개발을 중단하거나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은 달랐다. 머지않아 심해유전 개발이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고 꾸준히 R&D에 몰두해왔다. 판단은 적중했다. 중동지역 정정불안, 자원민족주의, 대륙붕유전의 원유매장량 고갈 우려 등이 겹치면서 고유가 시대가 도래하자 심해유전 개발이 재개됐고 삼성은 그동안 갈고닦은 기술력을 토대로 펄펄 날고 있는 것이다. 드릴 십 기술개발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LNG선 등 선종 전반에 걸쳐 기술과 생산성이 향상됐고 이게 뭉쳐서 또 다른 고부가 선종인 부유식 천연가스 생산ㆍ저장설비(LNG-FPSO)선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 삼성은 최근 유럽선사로부터 LNG-FPSO 1척을 6억8,000만달러에 수주했으며 조만간 나올 로열 더치 셸사의 50억달러 규모 수주전에서도 유력후보로 꼽히고 있다. 2006년 삼성중공업의 영업이익은 고작 990억원이었다. 그게 2년 만인 지난해 7,553억원으로 7배나 늘었고 올해는 대망의 1조원을 꿈꾸고 있다. 드릴 십과 LNG-FPSO 같은 고부가 선박 수주증가에 힘입은 것이다. 올해 이들 선박이 각각 30척 정도 발주되고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지리라는 게 세계유수 분석기관들의 전망이다. 삼성으로서는 미래의 성장동력을 확실하게 확보한 셈이다. 시장침체기 때 삼성이 다른 업체들처럼 기술개발을 뒤로 제쳐놓았으면 지금의 신화 같은 실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R&D 강화해 위기를 기회로
미증유의 글로벌 경기침체로 ‘축소지향의 경영’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투자ㆍ고용ㆍ마케팅 등 모든 면에 걸쳐 줄이고 조이기에 바쁘다. 일단 살아남는 것이 급선무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남느냐이다. 미래의 성장동력이 없으면 살아도 살았다고 할 수 없다. 지속 가능한 성장의 최대 원동력은 기술력이며 이는 R&D에서 나온다. 올해 국내기업의 R&D 투자는 27조6,058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0% 늘어날 것으로 조사됐다(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축소지향의 경영전략 속에서도 기업들이 R&D 강화에 나서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기업 경쟁력과 국가경제의 앞날에 희망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도 있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R&D를 선도하고 있는 대기업의 R&D투자는 19조9,690억원으로 오히려 전년보다 1.2%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며 R&D 투자 확대를 강조해왔는데 실상은 다른 셈이다. 다른 건 몰라도 R&D는 줄이면 안 된다. 그래서는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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