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2월25일] 합중국은행 권홍우 편집위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1791년 2월25일, 미국 의회가 합중국은행 설립안을 통과시켰다. 특징은 존속기한을 20년으로 못박았다는 점. 중앙은행 설립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합중국은행 설립안을 추진한 주인공은 해밀턴 재무장관. 물가안정과 주마다 제 각각인 화폐의 단일화, 국가채무 해결을 명분으로 내건 해밀턴은 연방의 권한강화에 반대해온 제퍼슨 국무장관을 비롯한 남부 주권(州權)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허울만 중앙은행일 뿐 실제로는 제조업과 상업 중심인 북부를 위한 주머니로 여겼기 때문이다. 주당 400달러씩 총 2만5,000주를 발행해 당시로서는 미국 최대 규모인 자본금 1,000만달러짜리 은행이 들어서면 주립은행들이 고사할 것이라는 피해심리도 남부의 각주를 결집시켰다. 의회의 중앙은행 설립논의 자체가 위헌이라는 견해도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해밀턴은 설립안을 관철시켰다. 상하원 모두 연방주의자가 우세했던 덕분이다. 합중국은행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지만 예기치 않던 정치적 파장을 낳았다. ‘정당은 절대군주의 신임을 차지하려는 신하들 간의 유치한 편가름’이라고 여겨 정당이 없었던 미국에 정당이 생긴 것. 은행 설립에 찬성하던 연방파는 연방당으로, 반대파는 민주공화당으로 갈라졌다. 잘 나가던 합중국은행은 존속기한인 1811년 다수당으로 올라선 민주공화당에 의해 폐쇄되고 말았다. 중앙은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따라 1816년 설립돼 20년 후 사라진 제2합중국은행의 존속 여부도 대통령 선거전의 판세를 갈랐다. 건국 초기 미국 금융제도의 변천과정은 정치권 판도와 쌍둥이였던 셈이다. 중앙은행 설립을 극구 반대했던 민주공화당의 후신격인 오늘날의 미국 민주당 정권은 싫든 좋든 주요 은행들을 국유화할 처지에 놓였다. 세월이 무상하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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