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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잘 발효되면 '익고' 잘못되면 '썩는다'. 영화 '된장'도 '익음'과 '썩음'사이의 갈림길에 서 있다. 독특한 대중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잘 익은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대부분의 일반 관객들에게는 너무 많은 재료가 혼합돼 무슨 맛인 지 알 수 없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자극적인 폭력 장면이나 한번 보고 휘발해버리는 코미디로 점철된 요즘 충무로에서 단연 돋보이는 시도의 영화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제목이 '된장'이라고 설마 진짜 된장에 관한 영화가 맞을까 생각하는 관객들이 있겠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아는 그 '된장'에 관한 영화가 맞다.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다는 비밀의 맛을 간직한'된장찌개'를 먹다가 체포된 희대의 연쇄살인마 이야기를 추적하던 방송국 PD가 이 '된장'의 비밀과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파헤친다는 내용이다. 된장을 소재로 한 영화인만큼 된장에 들어가는 소금, 콩, 물, 효모 등 다양한 재료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전개된다. 재료에 대한 깊이 있는 취재 덕분에 영화를 보고 나면 된장 만드는 법을 익히고 나올 정도다. 토속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상이 신비스럽고 아름답다는 점도 영화의 특이점으로 꼽을만하다. 된장을 담는 기본 스토리에 멜로와 애니메이션까지 가미한 때문이다. 이야기 전개에 무리수라 여겨지는 장면이 많긴 하지만 덕분에 영화는 단순한 음식 영화가 아니라 판타지 영화에 가깝게 표현됐다. 영화는'301,302'(1994)의 각본을 썼던 이서군 감독 연출과 충무로에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장진 감독의 기획이 손잡은 결과물이다. 두 사람이 함께 각본을 쓴 때문인지 된장의 비밀을 추적해 나가는 전반부는 방송국 PD 역의 류승룡에게 장진식 유머가 곳곳에 스며 있어 장진 영화의 느낌을 준다. 또 비밀의 된장을 만든 여인 장혜진의 이야기를 담은 후반부로 가면 멜로 드라마에 애니메이션까지 가미돼 전혀 다른 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는다. 두 사람의 조합이 잘 익은 맛을 낼지 조악한 맛을 낼지 관객들은 21일부터 스크린에서 시식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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