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용에 시달리는 일본 본토를 떠나 앞다퉈 신흥국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이 신흥 시장에서 잇달아 벌어지는 노사분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파른 경제성장으로 신흥국 내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가운데 특유의 보수적 기업문화를 가진 일본 기업들, 그중에서도 특히 실적이 좋은 기업들이 현지 노동자들의 불만의 타깃이 되면서 신흥국 내 노사 문제가 심각한 경영 리스크로 부각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2일 인도 최대의 자동차 업체이자 일본 스즈키자동차의 인도법인 마루티스즈키가 인도 북부 공장 두 곳을 당분간 폐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21일 RC 바르가바 마루티스즈키 회장은 뉴델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종업원과 임원들의 안전이 확보됐다고 판단된 시점에 공장 문을 열겠다"고 말했다.
마루티스즈키는 앞서 지난 18일 밤 인도 북부 하리나주에 위치한 마네사르 공장에서 발생한 노동자 폭동으로 인도인 인사담당 간부 한 명이 사망하고 일본인 파견직원을 포함한 100명가량의 종업원이 부상을 입은 사태 이후 공장가동을 중단해왔다. 스즈키는 이번 사태가 당일 아침 작업반장으로부터 주의를 들은 한 인도인 종업원이 폭력을 휘두른 것이 발단이 됐다고 하지만 소식통들은 사측 관계자가 불가촉천민 출신인 직원에게 모욕적 발언을 하고 해고한 것이 발단이 됐다고 전하고 있다. 정확한 원인은 현지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
회사 측은 "한 달 이상 생산을 중단할 수는 없다"며 오는 8월 중순에라도 조업을 재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방화 등으로 생산시설이 피해를 입은 상황이어서 공장 재가동에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스즈키의 '달러박스'인 인도 시장에서도 마네사르 공장이 차지하는 생산 비중이 40%에 달한다며 하루 조업중단에 따른 경영손실이 8억루피(11억엔 상당)에 달한다는 분석을 인용 보도했다.
문제는 이 같은 노사갈등이 이번 사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빈부격차가 심해진 신흥국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쟁의가 빈발하고 있으며, 특히 현지에서 성공한 일본 기업들이 표적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6월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앞선 복리후생으로 알려진 캐논의 프린터 공장에서 임금인상 파업이 벌어졌으며 이달 10일에는 인도네시아 일본대사관 앞에 100여명의 현지인들이 일본계 공장에서 해고된 노동자의 복직을 요구하며 거센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인도네시아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시장의 90% 이상을 일본 브랜드가 차지하는 곳으로 현지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이 노동자 시위의 타깃이 되기 쉽다고 신문은 강조했다.
일본무역진흥기구의 한 관계자는 "아시아 국가들에는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공장 설립이 많은 지역에서는 노동력이 부족한 실정으로 노조 측이 강도 높은 요구를 해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게다가 일본 기업 특유의 문화적 차이도 노사 간 갈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후지쓰종합연구소는 "성과를 중시하는 유럽이나 미국 기업과 달리 과정을 중시하는 일본계 기업에서는 종업원에 대한 평가나 책임소재 기준이 애매하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에 진출한 한 일본 기업에서는 아침마다 20분씩 열리는 조회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회사 방침에 대한 노동자의 반발이 쟁의로 번지기도 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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