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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경제가 '400호 홈런'서 배울 교훈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장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


필자는 야구를 좋아한다. 소싯적에 야구선수로 공도 좀 던져봤다. 그런 필자의 야구관람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 최근 있었다. 지난 3일 이승엽 선수의 400호 홈런이다. 올해 그의 나이 40세. 한국 야구사에 대기록을 세웠으니 더욱 놀랍다. 1995년 18세 나이로 첫 홈런을 쳤으니 선수생활 20년 만의 기록이다. 일본에서 활약한 8년의 기록을 합치면 무려 560개의 홈런을 만들어냈다. 이 밖에도 2003년 세계 최연소 300호 홈런을 달성했고 같은 해 한 시즌 56개의 홈런을 쳐 아시아 신기록을 달성하는 등 그야말로 이 선수는 기록 제조기다.

中·日 질주에 슬럼프 빠진 경제

400호 홈런공의 가치가 몇억원은 넘을 것이고 구단과 공을 주운 사람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흥미 위주의 보도가 인터넷을 달구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기록 자체가 아니다. '어떻게 그가 이런 대기록을 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이야말로 현재 우리 경제에 큰 시사점을 준다.

1998년으로 기억한다. 홈런왕 경쟁에서 앞서던 이승엽은 시즌 마지막 한 달간의 부진으로 결국 홈런왕 자리를 당시 OB베어스의 타이론 우즈 선수에게 넘겨줬다. 데뷔 3년 만인 1997년 자신이 작성한 홈런 기록을 우즈 선수가 10개나 뛰어넘는 모습을 바라만 봐야 했다. 하지만 이승엽은 포기하지 않았다. 바로 이듬해 한 시즌 54개의 홈런을 쳐 우즈 선수의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2003년 두 개를 더 치고 아시아 신기록을 경신했다. 극심한 슬럼프를 겪던 이승엽은 베이징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역전 투런 홈런으로 한국에 승리를 가져다줬다. 그가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었다면 올림픽 금메달은 지금쯤 일본이나 쿠바 선수들 목에 걸려 있을 거다.



우리 경제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중국은 기술력으로 우리 턱밑까지 쫓아왔고 일본은 엔저를 등에 업고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4월 10.2%를 기록해 전체 실업률의 3배에 가깝다. 갈등과 대립의 노사관계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까지 겹치면서 회복 기미를 보이던 내수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경제는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 채 세계 경제에서 존재감마저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움츠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우리 기업들은 조용히 혁신을 대비해야 할 때다. 반도체처럼 우리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이끌어가는 퀀텀점프 사례들을 보다 많이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묵묵하지만 부단히 노력하는 이승엽의 자세가 우리 기업들에도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 아닐까.

악재 두려워 말고 도전정신 발휘할 때

이승엽은 한국 프로야구 타자들의 역대 순위에서 삼진아웃 1,108개로 5위에 올라 있다. 그가 삼진을 두려워했다면 홈런 부문 대기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라고 외친 한 애플리케이션 업체의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1960년 이후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규모만 봤을 때 무려 700배 넘게 성장했다. 수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국인만의 도전정신이 빛을 발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있고 매년 터지는 사회적 악재들이 경제회복을 더디게 한다. 하지만 두려워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국회는 길을 보여주며 국민은 자신감을 갖고 기업들은 도전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게 이승엽 정신의 골자일 듯하다. 한국 경제에도 홈런 신기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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