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한 대형 건설사가 경기도 김포에 문을 연 아파트 모델하우스에는 주말 동안 1만5,000여명의 방문객이 몰리며 북새통을 이뤘다. 4,000가구가 넘는 미니 신도시급 아파트단지인데다 공급물량 대부분이 84㎡(전용면적 기준) 이하 중소형 아파트로 구성돼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달랐다. 1,600여가구만이 주인을 찾았을 뿐 전체 물량의 절반 이상이 미분양으로 남게 됐다.
내년에 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직장인 김모(37)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2~3년 뒤를 생각하고 이사할 집을 찾고 있었다. 김씨는 새로 장만한 집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임대를 놓고 기존 아파트에 거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월세 임대소득 과세 방침을 담은 2·26대책이 발표된 이후 김씨는 2주택자가 되면 임대소득세를 내야 한다는 부담에 결국 구매를 포기하게 됐다.
올 들어 지난 2월 말까지만 해도 부동산 시장에는 회복의 기운이 완연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 폐지, 취득세 영구인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거래가 늘고 가격도 상승세를 보였다. 치솟는 전셋값에 부담을 느낀 실수요자들도 속속 매매로 갈아타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하지만 4월 이후 시장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2·26대책으로 투자자들의 심리가 급격히 위축된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소비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실수요자들도 주택 매매를 주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거래 위축에 가격도 약세 전환=최근 주택 시장은 거래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의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5월 들어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하루 평균 18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38건보다 23% 줄었다. 1월 5,545건, 2월 7,835건, 3월 9,484건으로 계속 늘어나던 거래량은 4월 8,530건을 기록하며 하락세로 돌아선 뒤 5월 들어 감소폭이 더욱 커졌다. 한국감정원이 집계한 지난주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도 전주보다 0.03% 하락하며 4월 이후 7주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나마 활기를 띠던 신규 분양 시장도 최근 열기가 눈에 띄게 식고 있다. 지난주 김포·하남·시흥 등 수도권에서는 청약 미달사태가 속출했다. 그나마 대구·전북·부산 등 일부 지방에서만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방 분양 시장의 활황에는 단기차익을 노린 가수요가 유입된 것이어서 '완판' 행진이 지속될지 여부는 미지수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최근 3~4년간 폭등했던 아파트 전셋값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전셋값이 너무 뛰었던 탓도 있지만 세월호 참사에 따른 내수 위축 분위기도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엇박자 정책, 경기위축으로 하반기도 시계 제로=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각종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전문가들조차도 섣불리 향후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2·26대책 이후 수요자들이 심리적으로 더욱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시장 참여자들도 현재 상황에 다양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 수요는 전세에서 매매로 움직이는 실수요, 주택을 넓히거나 지역을 옮기는 교체수요, 그리고 투자수요가 있는데 지금은 실수요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2·26대책 등의 정책 탓에 교체수요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엇박자'를 해소해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과 업계에 따르면 2·26대책과 관련해 전세 과세 범위를 축소하고 매입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지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 보완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단 정치권에서는 전세소득 과세 대상 축소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당초 정부는 3주택자 이상에 적용하던 전세소득 과세를 형평성을 위해 2주택자까지 확대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시장의 충격이 거세자 다시 원래 범위로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조세저항이 적고 실물경제에 영향이 미치지 않을 만큼 과세가 이뤄져야지 갑자기 과세를 하게 되면 부동산경기가 가라앉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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