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Life] 이재호 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출판부문이 한류에 한국적 가치·철학 담기 앞장서야
이재유기자 0301@sed.co.kr
사진=김동호기자
해외시장 어린이 독자부터 적극 공략교과서·성인출판물 등으로 단계 확대도서전 전문가 파견 지원도 힘쓸 것기업과 협력 독서면접 매뉴얼 개발독서인구 늘려 출판불황 타개 추진도서정가제는 업계 의견수렴이 먼저
"현재 음악을 중심으로 전세계적인 '한류 붐'이 일어나고 있지만 한국적인 가치와 사상ㆍ철학 등 정신적인 부분 없이 오래 지속될 수 없어요.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이 잘 결합된 한류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출판 부문이 앞장서야 합니다. 출판진흥원 설립 이후 1년간 조직의 체질 개선 및 안정화에 집중했다면 하반기에는 본격적으로 '한류 인프라' 구축을 위한 사업에 나설 것입니다."
최근 취임 1주년을 맞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재호(59ㆍ사진) 원장을 지난 5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국립국어원 내 집무실에서 만났다. 한류가 반짝 인기에 그치며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해외에 한국의 문화와 가치를 널리 알려 한류 붐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얘기다.
◇해외 출판시장 진출, 아동ㆍ교육물부터 시작해야=이 원장은 무엇보다 해외 아동독자부터 공략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적인 문화와 정서를 담은 책을 해외에 보급해 세계의 어린이들이 어릴 적부터 친숙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어른들이 어릴 적 플루타크영웅전ㆍ파브르곤충기를 보고 컸듯이 아동출판물이나 영어ㆍ수학 교과서까지 개발해 보급한다는 목표입니다. 그 후에 성인출판물 시장도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봅니다."
출판진흥원은 하반기부터 '해외도서전 수출전문가 파견 지원사업'을 추진한다. 좋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비용 때문에 해외 도서전에 참여하지 못하는 중소출판사를 대신해 진흥원이 지정한 저작권 에이전시가 전시부스를 설치하고 홍보와 수출 상담에 나서게 하는 것이다. 먼저 하반기에 15개 에이전시를 선정해 각각 1,000만원씩 지원하고 성과에 따라 내년에는 이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내 출판물의 해외 진출은 그리 녹록한 과제가 아니다. 국내에서 1,700만부가 팔린 역사만화 '먼나라 이웃나라'도 해외 현지출판사를 찾지 못해 해당 출판사가 영어 번역판을 직접 제작ㆍ인쇄해 수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형편이다. 그나마도 중소출판사는 꿈도 꾸지 못할 얘기다. 진흥원에서 직접 제작까지 맡을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전신인 간행물윤리위원회 시절보다 예산이 늘었지만 한 해 68억원 수준으로 이중 사업비는 30억원 남짓하다"며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가능성 있는 콘텐츠를 지원해야 하고 진흥원이 직접 제작ㆍ인쇄해서라도 해외에 보내야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하지만 "진흥원도 그 필요성을 분명히 알고 있다. 정부 산하기관으로서 제약이 많지만 일부라도 반드시 추진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기업 채용 때 독서면접 도입 추진할 것"=지난 1ㆍ4분기 출판산업 통계 및 경기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신간이 지난해 1ㆍ4분기보다 13.2% 줄어든 1만8,450종, 특히 철학ㆍ심리ㆍ역사ㆍ문화 등 인문서는 25% 줄어 가장 타격이 컸다. 유아물도 20%, 과학기술 18.4% 등 전반적으로 10% 이상씩 모두 감소했다. 그나마 문학 부문이 제자리를 유지하며 선방했을 뿐이다. 출판진흥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출판 업계의 끝없는 불황에 대해 어떤 대책을 갖고 있을까.
그는 근본적으로 출판 수요가 회복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봤다. 무엇보다 독서인구 증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미 출판진흥원은 국민들에게 좋은 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매월 '이달의 읽을 만한 책' '청소년권장도서' 등을 선정해 주요 도서관에 목록과 추천사를 발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책이 일자리다'라는 구호 아래 추진하고 있는 것이 '독서면접 매뉴얼 개발 지원 사업'이다. 기업 채용과정에 독서능력 테스트 과정을 포함시켜 창의적이고 기획력 있는 인재를 채용하게 하자는 취지다.
"기업 입장에서는 스펙 위주의 채용을 벗어날 수 있고 출판 업계는 독서인구가 늘어나 불황을 타개하는 한 방편이 될 것입니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이나 현대모비스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참여업체를 협의하고 있습니다. 이미 독서면접을 시행하고 있는 국민은행ㆍ동양기전ㆍ애경 등과 함께 더 많은 기업들이 독서전형을 시행하도록 유도할 겁니다."
◇출판 업계와의 관계 개선은 진행 중=이 원장은 출판진흥원의 초대 원장이지만 엄밀히 말해 출판 업계 출신이라 하기는 부족한 점이 있다. 1981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이래 30여년을 언론에 몸담고 있었다. 동아일보 계열 출판편집인과 출판국장을 역임한 것만으로는 출판 업계를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 그가 출판진흥원 첫 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출판계 양대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가 '낙하산 인사'라며 공동으로 반대성명을 냈다. 그럼에도 지난해 7월25일 진흥원 출범식이 강행되자 광화문에서 출판인 500여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고 행사는 취소됐다.
그는 그간 어려움이 많았지만 상당히 개선됐다고 했다. 지난 4월 초 열린 '출판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협의회' 1차 회의에 대한출판문화협회ㆍ한국출판인회의ㆍ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ㆍ출판유통진흥원ㆍ한국서점조합연합회ㆍ한국출판협동조합 등 14개 유관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현안을 논의했다.
"진흥원 출범 이후로도 출판유통심의위원장 자리를 쭉 비워놓고 있었다. 이제는 한국출판인회의 윤철호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았고 그 외에도 다수의 출판인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출판인회의가 지난 3월 박은주 김영사 대표를 회장으로 선출하면서 당시 출판진흥기금 5,000억원 조성을 추진하겠다고 했던 데 대해서는 다소 이견을 보였다. 그는 "기금을 모아 출판인들에게 고루 혜택을 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면서도 "출판계에서도 도서 정가의 1%를 기금에 보태겠다고 하지만 경우에 따라 그 부담이 독자에게 돌아갈 수 있고 영세한 출판사에는 그것조차 부담일 수 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도서정가제, 출판 업계 의견 수렴이 먼저=지난 1년간 어려움을 겪을 탓일까. 출판 업계의 최대 현안인 도서정가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지난 5월 'OECD회원국 도서정가제 가이드북'을 제작ㆍ보급했고 현재는 도서정가제의 경제적 효과 등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도서정가제는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출판 업계에서도 사업 규모와 분야에 따라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나옵니다. 업계 전반적으로 중지를 모아야 합니다."
그는 또 전자책이 국내에 등장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체 출판시장의 2% 수준으로 부진한 데 대해 아직 시장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각 출판사ㆍ유통업체가 내놓은 전자책 단말기 간의 호환 문제도 있고 출판사들이 좋은 콘텐츠를 전자책 시장에 내놓는 것을 주저하는 부분도 있다"며 "게다가 전자책 단말기에 최적화된 콘텐츠의 양이 적다는 점도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부에서 핵심 사안에 대해 일부 '교통정리' 역할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는 "그렇지 않아도 지난 2009년 정부가 '전자콘텐츠관리센터' 설립을 추진했다가 기존 민간업체와 사업 내용이 겹쳐 중단한 바 있다. 그래서 불법 유통을 단속하고 시장에 대한 통계정보(DB)를 제공하는 '전자책 바로센터'로 전환했다"며 "전자책 시장이 갈수록 빠른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비중은 미미하다. 질적인 향상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관련 예산이 확충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일부 한국문학번역원과 업무가 중첩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자책 수출 활성화를 위한 번역 작업의 규모는 영어ㆍ중국어ㆍ일본어 등 3개 언어권 20종의 책에 대한 것"이라며 "한국문학번역원이 문학을 중심으로 지원하는 것과 달리 출판진흥원은 문학을 제외한 우수 전자책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번역원과는 상호 협력ㆍ보완하는 관계"라고 했다.
He is…▲1954년 광주광역시
▲1977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2008년 동 대학원 정치학 박사
▲1981~2012년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정치부장·논설위원실장·출판편집인 겸 출판국장
▲1996~1997년 미국 조지타운대 공공정책전공 초빙연구원
▲2006~2007년 관훈클럽 총무
▲2009~2010년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민간위원
▲2012~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
■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조사 연구·전자책 출판·유통선진화 등 주요업무교육청 등과 협력 체결·1인 출판사 지원도 활발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출판문화산업을 적극적으로 진흥시킬 목적으로 지난해 7월 말 설립됐다. 이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마련해 지난 2011년 1월 입법예고했었다.
이 개정안에 따라 전신인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폐지되고 진흥원이 재단법인 형태로 설립됐다. 주요 업무로는 출판문화산업 관련 조사 연구, 전자책 출판 등 디지털 출판 육성, 출판문화 산업 해외 진출 지원, 제작 활성화, 유통 선진화, 전문 인력 양성, 수요 진작 사업 등으로 출판문화산업 진흥을 위한 종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목표다. 또한 기존 업무인 간행물의 유해성 심의를 위해 산하에 '간행물심의위원회'를 설치했다.
이외에도 개정안에는 간행물 정가 표시 방법에 대한 위임 근거, 유통질서 위반 행위에 대한 과태료 상한액 인상(300만원→3,000만원), 도서정가제 위반 과태료 부과ㆍ징수 사무의 지방 이양 등 제도 개선 사항이 포함됐다.
이에 맞춰 각 기관과의 협력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미 상반기에 서울시교육청ㆍ경남교육청 등과 업무협의를 체결하고 EBS와도 책의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이외에도 진흥원은 '우수출판기획안 공모' '1인출판사 출판 지원' '중소출판사 청년인턴 지원' 등의 사업을 통해 중소ㆍ1인 출판사에 대한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또 하반기부터는 '해외도서전 수출전문가 파견 지원사업'과 기업 채용과정에 독서면접 전형을 포함시키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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