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수출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일본 기업들이 마을이나 거리를 통째로 신흥국가에 수출하는 신개념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버스나 철도 등 교통설비부터 주거단지ㆍ백화점ㆍ슈퍼마켓까지 '일본식 생활'을 고스란히 옮겨 심어 부진에 빠진 국내 내수산업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넷판은 민간 철도회사인 도큐전철이 베트남 호찌민시 인근 빈딘성에서 110㏊ 규모의 신도시 건설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큐전철은 교통ㆍ개발ㆍ유통ㆍ호텔ㆍ서비스 사업 등을 망라하는 도큐그룹의 주력업체이자 지난 1950년대부터 도쿄도 서부에서 추진된 다마(多摩)전원도시 개발사업을 주도한 기업이기도 하다.
도큐전철은 약 50년 전 일본 국내에서 실현한 전원도시 개발사업의 노하우를 살려 일본식 교통망과 생활문화를 그대로 베트남에 재연하는 프로젝트를 10년 동안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회사 측은 총 사업규모가 1,000억엔에 달하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200억엔을 출자, 현지 기업과 합자회사를 설립한 상태로 오는 2020년까지 일본식 고층맨션과 주택 등 7,500세대와 상업시설ㆍ기업 등이 함께 들어서는 전원도시 조성을 주도하게 된다. 신도시에는 '도큐(TOKYU)'라는 이름이 붙여질 예정이라고 니혼게이자이는 설명했다.
일본 최대 민간 철도회사인 도큐전철이 소규모 도시 하나를 통째로 수출하겠다는 과감한 프로젝트에 착수한 배경은 다름아닌 일본의 내수부진이다. 인구감소와 지속되는 경기악화로 대표적 내수기업인 도큐전철의 연결기준 매출액은 3월에 끝난 회계연도에 1조942억엔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5년 전에 비해 20%가량 줄어든 수준이다. 이에 따라 도큐전철은 아시아 신흥국들보다 수십년 앞서 경험한 고도 경제성장의 노하우를 살려 '도시수출'을 추진, 현재 1% 미만인 해외매출 비중을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실제 한 연구기관 조사에 따르면 저출산 고령화의 덫에 빠져 내수소비가 갈수록 줄어드는 일본과 달리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10개국에서는 가처분소득 5,000달러 이상의 중산층 이상 가구가 앞으로 10년간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장에 '일본식' 소비생활을 심을 수만 있다면 내수기업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갖게 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일본 오사카 중심부 지하에 광대하게 펼쳐진 지하상가의 운영 노하우를 살려 중국 베이징에 지하상가를 수출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오사카상공회의소는 규모 면에서 일본 전국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오사카 지하도를 베이징 중심부에 그대로 재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중국 측과 협의를 벌이고 있다. 상업시설이 밀집한 베이징시 둥청구와 왕푸징 지구가 유력한 후보지다.
지하상가 개발 프로젝트가 실행될 경우 오사카 지하도 운영업체를 필두로 상업시설 운영사업을 벌이는 게이한(京阪)전기철도ㆍ이토추상사가 사업에 뛰어들게 되는 것은 물론 드넓은 상가를 메울 유통업체와 외식업체 등이 줄줄이 사업기회를 얻게 된다. 이밖에도 지하도 개발공사에 필요한 하수처리나 공조공사 등 관련사업까지 합치면 대ㆍ중소기업을 망라하는 막대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실제로 일본은 이보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지하상가를 성공적으로 수출한 사례가 있다. 중국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시 중심부에 위치한 지하상가를 지난 14년 동안 운용해온 것이 일본 오사카의 중견 섬유상사다. 일본 특유의 친절한 접객 서비스와 화장품 업체 시세이도 등 입주점포들을 내세운 이 지하도는 개업 당시보다 3배 이상 늘어난 1만2,000㎡로 확대돼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기업들은 개별 제품이나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종합적인 수주능력 면에서 뒤진다는 지적이 제기돼온 만큼 기업들이 손 잡고 추진하는 오사카상의의 지하도 프로젝트는 새로운 패키지형 인프라 수출로 주목 받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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