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왜 도박하는 회사로 갔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법에 따라 수익을 창출하고 국가에 기여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가까운 사람들부터 이해시키는 중입니다."
경마로 대표되는 사행산업을 운영하는 공기업, 불황의 무풍지대, 신이 내린 직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마사회 하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떠올리는 이미지였다. 연간 1조4,000억원가량의 세금 외에도 농어촌 지원 등 다양한 공익활동을 펼치지만 베팅과 사행성이라는 부정적 인식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마사회는 이미지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힘겨운 도전을 선언했다. 그동안 경마에만 편중됐던 사업 영역을 넓혀 이른바 '말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변화의 출발대를 박차고 나선 것이다. 승마 활성화는 물론 말의 해외 수출, 승용 및 육용 말 사육 확대, 마유(馬油) 등 가공산업 육성, 그리고 사회공헌활동까지 말 전문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이런 거듭남의 중심에는 장태평(64) 한국마사회 회장이 있다.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장 회장은 지난해 11월 취임 일성으로 "경영 마인드를 가진 마사회, 국민이 아끼고 사랑하는 경마"를 강조했다. 13일 과천시 서울경마공원 내 마사회장실에서 장 회장을 만났다.
그는 "공기업에 와보니 기본적으로는 기업이지만 조직문화나 구성원 마인드 모두 공(公)의 측면이 강했다"면서 "기업으로서 경영 마인드와 마케팅 마인드를 심어 놓으면 여기 에 왔다가는 충분한 이유가 되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영 마인드를 강조하는 것은 레저산업의 환경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세계적으로 경마가 사양화를 겪고 있고 국내 경마 역시 카지노 등 게임산업과 프로 스포츠의 활황 속에 매출을 유지하기도 점점 힘겨워지는 상황이다.
"최근까지도 경마매출이 꾸준하게 늘어나 어려움 없이 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탈리아 경마가 카지노에 밀려 반토막 나는 등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호주 경마장은 베팅 수입이 22%에 불과한 반면 한국마사회는 매출의 98%를 경마에 의존하는 수익구조인데도 그에 대한 대비가 없더군요."
경제 관료 출신인 장 회장은 '수익구조를 다변화해 기업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10년 후에는 경마 매출이 30% 정도 줄어들 겁니다.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기업은 뭔가 변신을 준비해야 하고 그 기초를 닦는 게 길지 않은 임기 동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서울경마공원부터 변화시키고 있다. 경마공원은 서울에서 가깝고 드넓은 공간이지만 경마가 없는 평일(월~토요일)은 그냥 놀려진다. 마사회는 기존 시설과 자산의 가동률을 높이는 일을 우선 시작했다. 경마 관람대 건물 6층에 마련된 수용인원 600명 이상의 컨벤션센터를 개인이나 기업의 예식장이나 콘퍼런스 장소로 대관하는 영업활동을 적극 펴는 중이다. 경마공원 입장료를 800원에서 1,000원으로 올렸고 무료로 나눠주던 경마 예상 책자도 600원에 판매한다. 공원 내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 대여 서비스도 올해 안에 유료화할 계획이다. "무료 제공 자체가 사행산업이라는 스스로의 인식 때문입니다. 유료화해야 감동 서비스에 더욱 신경 쓰게 되고 고객의 수준도 높아질 것입니다."
경마공원을 테마파크로 조성하는 것도 기대되는 청사진이다. 취임 직후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에버랜드와 남이섬 등을 둘러봤던 그는 경주로를 제외한 여유 공간에 조각물과 놀이기구 등을 설치해 온 가족이 365일 찾도록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인근에 과학관과 서울랜드, 국립현대미술관 본관 등이 있고 서울 관광과 연계도 가능합니다. 국가사업으로 숙박시설을 만들고 관광특구화하면 중국과 아시아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봅니다. 국민들의 경마에 대한 이미지 개선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겁니다."
마사회는 국가 말산업 육성 전담기관으로 지정돼 승마 인프라 확충도 중요 과제다. 장 회장은 "승마가 좋은 운동이라는 것은 많이 알려졌지만 비용 때문에 승마 대중화는 아직 이른 게 현실"이라며 복합형 승마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복합형 승마장은 시ㆍ군 등 지방자치단체가 부지를 제공하고 정부가 시설을 지원하며 마사회가 운영을 맡는 모델이다. 투자비가 적게 드니 이용료를 확 낮출 수 있고 4대강 줄기 부지 활용도 가능하며 재활승마도 병행할 수 있게 된다. 마사회 경마 실황중계로 소규모 베팅을 허용하면 사료비ㆍ관리비ㆍ인건비 등 운영경비를 자체 충당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공모 중이며 올해 2곳 정도를 확정한다는 목표다. 이와 함께 지자체 운영 승마장 등 다양한 시설과 규모의 승마장 건설을 지원할 방침이다.
말 사육을 늘리는 것은 말산업 인프라 구축의 핵심이다. 현재 국내 말 사육 두수는 3만마리 정도에 불과해 미국의 920만마리와 비교가 안 된다. 장 회장은 "20만마리를 넘어서면 말산업이 명실상부하게 자리를 잡고 승마 전문 인력과 관련 산업이 커져 말 3마리에 1명 꼴의 고용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마사회는 승마 전문인력 자격증 제도를 신설했는데 은퇴 후 준비로 교육을 받으러 오는 회사원도 있다. 은퇴자나 귀농자들이 농사와 말 사육, 말 체험 관광 등을 결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국민 말 타기 운동과 말고기 소비 권장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마사회 본연의 콘텐츠인 경마의 인기와 질을 높이는 것은 기본 과제다.
"경마는 남녀노소가 함께할 수 있는 건전한 레저스포츠입니다. 베팅을 하지 않더라도 경주 자체를 스포츠로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프로야구 마케팅 등을 벤치마킹해 신나는 경마장, 박진감 넘치는 경주를 제공하겠습니다. 오는 9월과 11월에는 경마 1등급 국가인 일본(한국은 3등급)과 한국 경마 최초의 국제 경주를 치릅니다. 이를 통해 2022년에 미국 켄터키더비나 두바이월드컵 같은 세계경마대회를 개최하기 위한 기초를 닦을 계획입니다."
국민이 아끼고 사랑하는 경마로의 탈바꿈을 위해 정부의 시각 변화도 촉구했다. 장 회장은 "경마는 배후 산업이 존재하고 경제파급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다른 사행산업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해 국내 전체 사행산업은 18조원 규모였던 데 비해 불법 도박 시장은 그 3배 이상에 달해 후진국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정부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법에 따른 제도권 산업 규제보다도 탈세 등 부작용이 큰 불법 도박 단속에 주력해야 합니다." 사진=이호재기자
장애청년 취업 프로그램 호평… 승마힐링센터 대폭 늘려 박민영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