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선박의 절반 이상을 보유했던 나라.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극찬했던 국가. 어디일까. 15~17세기의 네덜란드다. 동서고금의 주요 국가 가운데 부자 순위 2위인 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두 배 이상 높았던 곳도 네덜란드가 유일하다. 천연자원도 없고 지대가 낮아 늘 바닷물에 잠기는 척박한 환경의 네덜란드가 번영을 맞은 계기는 청어잡이 경쟁에서의 승리.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유럽인들에게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인 청어잡이에서 덴마크와 독일 한자동맹, 스코틀랜드에 밀리던 네덜란드는 갑자기 선두로 떠올랐다. 비결은 칼과 염장법. 질랜드의 어부 빌렘 벤켈소어 덕분이다. 그는 갓 잡은 청어의 이리를 제외한 내장을 단칼에 베어낼 수 있는 작은 칼을 만들고 소금에 절여 통에 보관하는 통절임 방법을 1358년께 고안해냈다. 선상에서 바로 염장된 청어는 1년간 보관이 가능해져 네덜란드는 돈방석에 앉았다. 운도 따랐다. 15세기 초부터 청어의 산란지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발트해에서 북해로 바뀌는 통에 네덜란드는 포획에서 가공ㆍ수출까지 독점체제를 갖췄다. 네덜란드는 저장용 통의 재질과 소금의 종류, 그물코의 크기를 정하고 어획기를 한정해 청어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끌었다. 수산업에서 촉발된 활황은 조선산업과 목재업ㆍ무역업ㆍ금융업 발전을 낳고 네덜란드는 초일류국가로 다시 태어났다. 요즘도 네덜란드 곳곳에서는 청어축제가 벌어진다. 수십만의 관광객인 몰린다는 대표적 청어축제(Vlaggetjesdag)가 올해는 6월12일에 열린다. 청어잡이 어선의 풍어와 선원들의 안전을 기약하고 어부 벤켈소어를 기념하는 청어축제에는 자부심이 녹아 있다. 어부가 고안한 평범한 생선처리용 칼이 그 어떤 왕과 장군의 보검보다 나라를 번영시키고 시장경제의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는 자부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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