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은행이 반세기만의 홀로서기를 앞두고 조직부터 경영전략, 문화에 이르기까지 기업 체질을 송두리째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수협중앙회의 신용사업부문으로 출발한 수협은행이 오는 2015년 신용 자회사 분리에 맞춰 '해양수산 전문은행'으로 재탄생 하기 위해 환골탈태의 대변신에 나선 것이다.
그 중심에는 올 4월 3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청산하고 수협은행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긴 이원태 행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 행장은 14일 서울 송파 신천동에 위치한 수협은행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더 이상 '작지만 강한 은행'에 머물지 않고 67만 수산인과 함께 커나가는 은행이 되겠다"며 수협은행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2016년 바젤Ⅲ 도입을 앞두고 수협은행은 자본을 확충해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에서 자회사로 분리하는 사업구조개편을 완수해야 한다. 정부는 일단은 2015년까지 수협은행의 분리작업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올해 안에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수협은행 사업구조개편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을 이 행장이 주도해야 한다.
"바젤Ⅲ도입, 위기 아닌 새로운 변신의 기회"
이 행장은 "자회사 분리에 성공하면 수협은행은 수협중앙회가 최대 주주인 진정한 협동조합 은행으로 거듭나게 된다"며 "해양수산 전문은행으로 재탄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수협은행의 사업구조개편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수협은행은 상환 의무가 있는 자본을 인정하지 않는 바젤Ⅲ 규정에 따라 2001년 예금보험공사에서 수혈 받은 공적자금 1조 1,581억원을 수협은행 자본금으로 바꾸고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수협중앙회가 올해 초 정부에 제출한 '수협중앙회 선진화 방안'에 따르면 수협은행은 자회사로 분리 후 바젤Ⅲ와 국제회계기준(IFRS) 적용에 대비해 1조 9,380억원의 자본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행장은 "수협중앙회 자본금 1조 1,581억원(공적자금)의 적격자본전환 및 중앙회ㆍ임직원ㆍ회원조합 추가출자(2,800억원) 등으로 모두 1조 4,381억원을 자체 조달할 예정"이라며 "그 밖에 부족 자본금 5,000억원은 수협중앙회가 수협금융채권을 발행하고 이에 대한 이자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이차보전 방식을 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바젤Ⅲ 도입이라는 돌발변수로 수협은행이 구조개편을 추진하게 됐지만 이 행장은 이를 '위기'가 아닌 새롭게 변신할 수 있는 '기회'라고 표현했다.
이 행장은 반세기만의 대변신을 기회로 만들기 위해 조직, 영업전략,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한 첫 단추로 TF(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기초 공사가 튼실한 집은 100년이 지나도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 행장의 철학처럼 수협은행은 새로운 50년을 위한 기반 다지기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TF팀은 ▦2017년까지 중단기 경영목표 수립을 위한 경영관리개선반 ▦수익성 제고를 위한 영업구조개편반 ▦성과주의 문화를 정착하고 임직원 역량 강화를 위한 조직문화혁신반 ▦내실 경영을 위한 위기관리강화반 등 4개 부문으로 구성돼있다.
워낙 기업 전 부문에 걸쳐 변화가 진행되다 보니 수협은행 내부에서는 "마누라ㆍ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어록을 남기며 20년 전 신경영을 선언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빗대어 '이 행장이 직원만 빼고 모두 다 바꾸려고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 행장이 수협은행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넘칠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흐르던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웅덩이를 다 채울 때까지 잠시 멈춰가는 것처럼 수협은행도 더 큰 바다를 향해 흘러가기 전 잠시 숨을 고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찾아 반성하고 마음을 다잡자는 의미에서 놓치기 쉬운 사소한 부분까지도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을 진행 중인 거죠."
"해양산업 전반으로 확장해 새로운 수익 기반을 확대"
사업구조개편을 전후로 수협은행의 최대 관건은 경쟁력 확보이다. 해양수산전문은행이란 특수성을 유지하면서도 일반 시중은행들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행장은 우선 신규 먹거리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기존에 연간 7,000억원 규모로 운용중인 선박ㆍ항만ㆍSOC 중심 해양금융 여신을 해양 플랜트, 항만 물류, 유통 등 해양산업 전반으로 확장해 새로운 수익 기반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 행장은 "선박금융에서 해양플랜트 지원선 등 신규 영역으로 영업을 확대하고 컨테이너박스 제작금융과 같은 수협은행만의 특화상품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ㆍ장기적으로는 수산금융 지원대상 확대도 모색하고 있다. 그는 "기존 수산물생산자 중심의 자금지원을 유통업, 소매업으로 확대해 수산업 가치사슬 전반에 대한 금융지원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때 마침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해양수산부가 부활한 것도 수협은행에게는 대형 호재라는 것이 금융계의 평가다. 수협은행은 해양수산부의 정책 금융을 지원하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6월 초 중소ㆍ중견선사의 운영자금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해수부 및 한국선주협회와 MOU(업무협약)를 체결하기도 했다.
선주협회가 회원사 중 신용도가 양호한 적격업체를 추천하면 수협은행은 신용보증기금 보증서 담보 하에 기업별로 최대 30억 원까지 운영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식이다.
올해 2월에는 내항여객선이나 내항화물 운송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1,759억원 규모의 '연안선박 현대화 이차보전사업' 이행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행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반 시중은행에서 해운분야 여신 규모를 축소하며 중소ㆍ중견선사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며 "이처럼 유동성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해양 수산분야의 중소기업을 발굴ㆍ지원해 해양수산전문은행으로서 역할을 강화해 나갈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틈새시장 공략, 킬러 콘텐츠로 경쟁력 확보"
소매금융 부문에서 수익성 제고도 이 행장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수협은행은 협동조합은행으로 영업망 확대와 서비스 개선을 위한 대규모 투자에 제약이 따르며 성장이 정체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이 행장은 "대형 시중은행들과 체급 차이를 인정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하거나 킬러 콘텐츠를 선보여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신도시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영업점을 개설하고 인터넷 영업점을 통해 타행 대비 영업점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수협은행의 특성을 잘 반영해 올해 3월 온라인 상에 '사이버 독도'지점을 개설하고 '사랑해(海) 독도통장'을 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수신기반 다양화 및 비이자수익 부문 확대도 모색하고 있다. 이 행장은 "저원가성 예금 비중을 확대해 수익성을 제고하고 카드나 외환 등 비이자이익부문을 강화해 질적ㆍ양적 성장을 함께 도모하겠다"고 강조했다.
30년 공직생활을 뒤로 하고 현장에 뛰어들며 스스로를 '새내기 CEO'라 일컫는 이 행장. 그는 "아직까지 얼떨떨한 부분도 있고 1,600명이 넘는 직원들의 생계를 짊어진다는 부분에서 책임감과 부담감도 크다"고 말하며 취임 이후 두 달여의 시간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이 행장은 집무실 한 켠에 걸려 있는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글귀를 가리키며 수협은행 사령탑으로서 다부진 의지를 드러냈다.
"'어떤 때나 장소에서도 늘 주인의식을 잃지 마라'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공직생활 내내 수첩 제일 앞에 적어놓던 글귀인데 수협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도 수처작주의 정신을 실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인생 2막과도 같은 수협은행이 앞으로 한 단계 도약하도록 스스로 주춧돌이 되겠습니다."
He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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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는 현장에서…" 틈만 나면 영업점 방문 ■이원태 행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