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업용 부동산의 부실이 표면화되면서 제2차 금융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과 연관된 금융 부실 가능성은 그간 몇 차례 언급돼 왔지만 최근 들어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까지 이로 인한 대규모 은행권 손실을 공식 경고하고 나서 '제2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확산될 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전문가들도 "상업용 부동산 발 위기 진화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정부 지원과 함께 고용 확대 등 민간분야 부양이 필요하다"며 "상업부동산 부실은 아직 최악의 국면을 통과하지 못한 만큼 정부의 추가적 대응이 요구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2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존 그린리 FRB 은행규제감독국장은 미 하원 정부개혁 소위원회에서 "상업용 부동산에 지나치게 의존해 대출 영업을 해 온 일부 지방은행들이 이로 인한 또 다른 대출 손실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헤지펀드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도 최근 고향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실시한 한 강연에서 미국 상업부동산 부실로 인한 2차 위기 성격의 '더블딥'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 위기로 유혈이 낭자해질 수 있다"며 " '더블딥' 위기가 내년이나 후년께 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윌버 로스 역시 최근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거대한 추락이 막 시작됐다"며 이 같은 경고 대열에 동참했다. 다우존스 주가지수가 1만선을 다시 노크하고 중앙은행들의 '출구전략'이 화두가 된 지도 한참 지났지만 2차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의아한 일일 수 있다. 지난 3월 저점으로부터 S&P500지수는 58%, 나스닥은 67%, MSCI이머징시장 지수는 95% 가량 치솟았다. 원유와 금 등 각종 상품도 종류를 막론하고 오르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이었던 대형 은행들의 실적도 잇달아 회복돼 은행 시스템이 부도 위기를 넘어서 최악의 위기 국면을 통과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금융 시스템 회복에 전력하는 사이 기업 투자 및 소비 분야는 점차 약화됐고, 이로 인한 폐해가 기업 투자나 고용과 연관성이 높은 상업 부동산 분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 최근 파산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미국 은행들은 대부분 중소 및 지방은행들로 상업 부동산 부실로 인한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월가 대형 은행들과 달리 금융위기 이전부터 지방 각 도시에 산재해 있는 빌딩, 상가 등 지역일체형 부동산에 대한 대출 비중이 매우 높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중소기업의 도산 및 감원이 늘자 공실률 증가에 따른 임대수입 하락과 부실 모기지 증가로 인한 손실을 함께 떠안아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최근 잠재위기 국면에 다다른 미 은행 수가 지난해 117개에서 올해 416개로 늘어 났으며, 이중 이미 파산한 100여개를 포함, 올해 안에 모두 120여개 은행이 파산할 것으로 내다봤다. 은행 업종 분석을 담당하고 있는 RBC캐피털마켓의 제러드 캐시디는 "상업부동산 시장의 위기로 2013년까지 6,000억 달러의 신규 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1,000여 개의 각종 금융회사가 파산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상업부동산 시장은 지난해 금융위기 초입에는 그다지 큰 손상을 입지 않은 모습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실 폭이 확대되면서 금융권 경영 개선의 마지막 발목을 잡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07년 4ㆍ4분기 200억 달러 수준에 그쳤던 상업부동산 채권의 분기별 부도총액은 올 2ㆍ4분기에 1,110억 달러로 5배 이상 급증했다. CB리차드엘리스가 집계한 미국 내 대도시 사무실 공실률 역시 지난 2분기에 13.3%에 달하며 2005년 2분기(13.4%)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짐 코스텔로 토르토 위튼 리서치 대표는 "상업 부동산 시장은 실업률과 더불어 전형적인 경기의 후행지표"라며 "통상 기업들은 손실이 몇 분기 지속된 뒤 노동자 해고에 나서는데 이렇게 되면 실업률과 함께 사무실 공실률이 증가하며 상업부동산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상업 부동산 임대 시장은 내년 하반기까지 하락세를 지속하며 턴어라운드에 진입할 가능성이 많지 않다고 타임지는 전망했다. 모티머 주크맨 보스턴 프로퍼티 회장은 "실업자 수가 내년까지 증대될 수 있기에 상업부동산 시장의 앞날은 더 음울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마크 홀리데이 SL그린리얼티 대표도 "상업부동산 시장의 바닥은 아직 오지 않았다"며 "안정화 신호도 있지만 앞으로 6개월 이상 침체가 지속될 것 같고 특히 내년이 과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 회복에 가장 큰 걸림돌은 아직도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지적된다. 주택시장을 달구었던 저금리와 부동산 가격 상승은 한 때 상업부동산 시장에도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이 대거 유입되는 효과를 낳았다. 이들은 비용의 80%에 이르는 과도한 차입으로 상업용 건물을 싹쓸이했고 건물 가격은 더욱 상승했다.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2005년에서 2008년까지 4년 동안 샌프란시스코 시내 사무실 빌딩의 75%가 이 같은 여파로 주인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지난 1년간 절망과 한숨으로 돌변했다. 부실난 건물이 급증하면서 차압이 늘고공실이 늘면서 거리의 곳곳 빌딩은 유령의 서식처로 모습을 바꿨다다. 보스턴을 상징하는 건물인 행콕 타워의 경우 지난 1년 동안 가격이 절반 가량 폭락했다. 리먼브러더스가 입주해 있었던 뉴욕 파크에비뉴 399번가 건물도 현재 지난해보다 40% 할인된 평방피트 당 59달러에 임대되고 있다. 이 건물의 임대비용은 지난 2002년에는 평방피트 당 631달러에 달했다. 뉴스위크는 "행콕 타워의 사례는 상업부동산 시장이 처한 위기 국면을 말해준다"며 "다른 상업 부동산들도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회복을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 고용 및 개인 소비 진작책을 포함한 보다 구체적인 부동산분야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미 정부는 그간 소비자 금융 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기간자산담보부증권 대출 프로그램(TALF)을 도입, 올해 말까지 연장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상업 부동산 분야로 지원된 자금은 그리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블룸버그 통계에 따르면 TALF 지원자금은 신용카드 부문에 160억 달러, 신차구입 대출 부문에 110억 달러, 학생대출 부문에 35억 달러에 달했으나 상업용 부동산 분야에서는 겨우 6억7,000만달러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타임은 "은행 파산 시 예금자 보호를 담당해 온 FDIC 등 미 정부의 지원 여력은 이미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면서 "한 때 520억달러에 달했던 FDIC도 현재 자금 고갈 상태라 추가적인 지원 여력은 극히 불확실한 상태"라며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암울한 현실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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