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은 즉위 직후인 1405년 창덕궁을 짓는다. 바로 옆에, 겨우 10년 전에 완공된 경복궁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새로 궁궐을 만든 것이다. 경복궁은 최대 정적이었던 정도전이 설계한 것이어서 태종으로서는 머물기가 불편했을 것이다. 경복궁이 엄격한 성리학적 이념에 따른 인위적인 모습이라면 창덕궁은 지형에 맞춰 자연스럽게 건물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이 궁궐의 중간에 있지도 않고 정문 격인 돈화문도 중심축에서 벗어나 있다. 오히려 국왕들은 경복궁보다 창덕궁에 머무는 일이 많았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파괴된 후엔 창덕궁이 조선왕조의 정궁 역할을 했다.
창덕궁이 선례가 되면서 조선만의 특이한 현상이 생겼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도성 안에 궁궐이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역대 국왕들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창경궁·덕수궁·경희궁 등을 건축하면서 조선왕조는 다수의 궁궐을 가진 나라가 됐다. 이들도 자유로운 배치가 특징이다. 사진은 인정전 전경. 겉으로 봐서는 2층이지만 실내는 하나로 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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