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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양형위원회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2007년 4월 출범했다. 출범 이후 6년 동안 양형위는 배임ㆍ횡령과 살인, 성범죄, 증권ㆍ금융, 지적재산권 범죄 등 총 19가지 범죄에 대해 양형기준을 확립했다. 그러나 기준안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양형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이어지고 있다.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서울경제는 양형기준이 확립된 이후에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범죄군에 대해 양형기준안을 살펴보고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을 5회에 걸쳐 짚어본다.
고모 전 대한보증보험 대표는 삼미특수강 등 8개 기업에 모두 140여억원을 지급 보증했다가 업무상 배임 혐의로 지난 2000년 7월 검찰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한보철강에 399억원을 지급 보증해 준 심모 전 대한보증보험 대표도 같은 날 기소됐다. 지급 보증해 준 철강회사들의 부도로 대한보증보험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2004년 "대한보증보험은 일반 은행과 달리 보험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어느 정도 있음을 전제로 영업을 하는 특성이 있다"며 "손해가 발생했다는 결과만으로 배임죄 성립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 보냈다.
배임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한 첫 판례였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기업의 경영자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해 이해관계 없이 회사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믿음을 갖고 경영에 관해 판단하면 회사에 손해를 초래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원칙을 말한다.
업무상 배임에 대해 공정하고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판례가 나옴에 따라 당시에는 앞으로 배임죄를 적용하기가 한층 더 까다로워 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대법 판결 이후에도 배임죄에 논란은 계속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 초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을 시작으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까지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되자 업무상 배임죄에 대한 법원 판단을 두고 재계는 물론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이견이 제기됐다.
배임죄는 회사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임무를 져버리고 본인이나 제3자에게 재산상 이익을 갖도록 했거나 그런 의도로 사무를 맡긴 자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문제는 경영판단의 원칙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판사에 따라 배임행위를 경영판단으로 볼 지, 형사처벌 대상으로 볼 지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2000년 대한보증보험 대표들을 기소할 당시에는 양형기준안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형법 355조 2항과 형법 356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3조 1항을 기준으로 양형을 결정했다.
형법 355조 2항을 어겼을 때는 5년 이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 벌금을, 형법 356조를 어겼을 때는 10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을 선고할 수 있다. 특경가법에 따르면 불법이익이 50억원이 넘을 경우 최대 무기징역의 형을 선고할 수 있다.
결국 불법행위로 인한 이익금이 같더라도 판사에 따라서는 형량이 벌금형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는 셈이다. 업무상 배임죄가 기업인을 옥죄는 전가의 보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09년 4월 실형 선고를 원칙으로 하는 배임ㆍ횡령 범죄 양형기준을 의결했고 해당 기준은 같은 해 9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배임과 횡령이 법리에서 큰 차이가 없고 법적 형량도 같다는 이유에서 배임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횡령죄와 묶어 정했다. 실제로 횡령죄의 대상은 특정한 재물이고 배임죄의 대상은 재물 이외에 일반 재산상의 이익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배임죄와 횡령죄는 둘 다 타인에 대한 신임관계를 배반해 재산의 손해가 발생될 때 적용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양형기준은 불법 이익금 1억원 미만, 5억원 미만, 50억원 미만, 300억원 미만, 300억원 이상 등 총 5가지로 나눠져 있다. 1억원 미만의 횡령ㆍ배임죄는 징역 4월~1년 4월을 기본형으로 하고 감경 사유가 있으면 징역 10월, 가중 사유가 있으면 징역 2년 6월까지 선고하도록 규정돼 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되는 50억원 미만은 징역 2~5년이 기본형이며 300억원 미만은 징역 4~7년, 300억원 이상은 징역 5~8년을 기본형으로 하고 있다.
배임죄는 실형 선고를 원칙으로 하지만 감경사유가 있으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다.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는 감경사유로는 ▦소극적 가담 ▦피해가 회복된 경우 ▦업무상 횡령ㆍ배임이 아닌 경우 ▦회사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경우 등이 있다.
특히 자신의 사리사욕 목적 없이 오로지 회사 이익을 목적으로 한 행위에 대해 양형위는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며 감경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계열사의 도산 등을 막기 위해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경우나 무모한 투자행위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가한 경우 인수나 합병과정에서 회사로 하여금 과다한 채무를 부담하게 한 경우에는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양형 기준안이 마련된 뒤에도 법조계 안팎에서는 배임행위를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이 경영판단의 원칙을 판례로 인정하긴 했지만 경영판단의 원칙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 개별 사건마다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한 사례가 충분히 쌓이지 않아 여전히 하급심에서는 업무상 배임죄가 유죄로 인정됐다가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되는 사례도 있다.
최근 대법원은 불법대출 혐의(상호저축은행법 위반 등)로 기소된 채규철 도민저축은행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6년과 벌금 1,000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담보비율을 충족한 일부 대출에도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한 것은 부당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형법상 배임죄의 특칙으로 상법상 특별배임죄를 손질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상법 제382조(이사의 선임, 회사와의 관계 및 사외이사) 2항에'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경영상의 판단을 한 경우에는 의무의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거나, 상법 제622조(발기인, 이사 기타의 임원 등의 특별배임죄)에'경영판단 행위일 경우,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하자는 얘기다.
실제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 등 10명은 이사가 경영적인 판단에 따라 임무를 수행했을 때 손해에 따른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상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최근 제출했다.
징역형이나 벌금형이 아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또 일부에서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시화 할 경우 법관의 재량권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현재 배임죄가 기업인들의 경영행위를 제약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미국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충분히 보장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민사적 책임만 묻을 수도 없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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