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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자유시장 경제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어떤 기업이나 산업의 도산으로 정치경제적 위험이 초래될 우려가 있을 경우 정부가 재원을 투입해 민간에 개입해 온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들 기업에 대한 지원은 공적 자금 투입에서부터 협조 융자, 대출 보증, 금리 인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개돼 왔다.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 대상에는 대부분 유명 대기업이나 업계내 핵심 기업들이 많아 '미국판 대마불사(大馬不死)'란 비판을 무색케 하면서 도덕적 해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해당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핵심 경영진은 반드시 퇴진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기도 하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의 구제금융 역사는 1970년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정부는 자금난을 겪던 록히드 항공에 공적 자금을 대출해 줬고, 펜 센트럴 철도의 투자자와 경영진에도 자금을 지원했다.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에는 자동차업체 크라이슬러에 15억달러 규모의 대출 보증을 지원했다. 이 때 자동차 업체가 위치한 지역의 의원들은 스스로 구제방안을 마련, 정부의 대출 보증을 압박하기도 했다. 1980년대 말 저축대부업계(S&L)의 대규모 부실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총대를 멧다. 당시 투입한 자금은 1,230억달러에 달한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사태 때는 대형 금융사들의 협조 융자로 35억달러의 긴급자금을 조성해 위기를 넘겼다. 지난 2001년 알 카에다에 의해 세계무역센타가 무너진 9.11 테러 이후 항공업계가 어려움에 직면하자 미 의회는 항공업계에 15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과 대출보증을 지원하기도 했다. 올 들어선 지난 3월 서브프라임 부실 여파로 미국 5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도산 위기에 빠지자 FRB가 나서 JP모건체이스 은행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고 합병시켰다. 6개월 뒤인 최근에는 두 국책 모기지 업체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대한 2,000억 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지원과 함께 사실상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NYT는 미국 연방정부의 잇따른 금융기관 지원에 대해 자유주의라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도외시한 처사라며 개탄했다. NYT는 버지니아대 다든 경영대학의 로버트 브루너 학장의 말을 인용, "우리가 순수한 시장경제 금융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자본주의 정부의 시장 경제 지원은 현대 자본주의에 내재된 필수적인 메커니즘이라는 시각도 있다. 시장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가 개입해 시장을 복원하는 일은 1930년대 대공황이후 미국식 수정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로 이미 오래전부터 내재돼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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