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9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출연해 "러시아의 크림반도 장악 이후 유럽 국가들이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가 외교적 해결을 거부하면 유럽과 러시아 간 에너지 및 경제 분야의 연결고리를 재설정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헤이그 장관의 발언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EU가 러시아에 목을 매는 천연가스 수급구조를 바꾸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EU는 지금까지 러시아에 천연가스 소비량의 4분의1을 의존하는 수급구조상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주저했다. 여기에는 지난 2006년과 2009년 가스 공급가를 둘러싼 마찰로 러시아가 가스 파이프라인을 잠그면서 유럽이 추위에 떨었던 경험도 작용했다.
실제로 8일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은 올 2·4분기 중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가를 37% 올린다고 밝히면서 2009년의 가스 공급중단 사태를 들먹이기도 했다.
유럽의 이 같은 탈러시아 움직임에 미국 정부도 천연가스 수출 확대를 검토하고 나섰다. 현행법상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에만 자유로이 수출할 수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예외적 수출을 허가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공화당의 리사 머코스키 상원 에너지위원장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미국이 수출확대를 시사하기만 해도 러시아의 협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미국이 에너지 수출을 늘린다고 해도 유럽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 또한 만만찮다. 미 정부에 이미 접수된 예외적 수출신청도 일러야 내년 하반기에나 시행될 수 있는데다 LNG플랜트 등 인프라를 갖추는 데도 시일이 걸린다. 현재 미국의 가스 수출량은 러시아의 5분의1 수준이다.
한편 오는 16일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 주민투표를 앞두고 서방과 러시아의 외교전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아르세니 야체뉴크 우크라이나 총리는 12일 미국을 방문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사태를 논의한다. 백악관은 이날 논평을 내 이번 회동이 "위기상황에서 참을성과 용기를 보여준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지지"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독일·영국 정상들과 전화통화를 했으나 각자의 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