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언론사 기자들과의 모임에서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은 후배의 소개팅을 부탁했다가 ‘그 정도 되는 전문직 여성이면 여기저기서 소개가 많이 들어오지 않냐’는 답변을 들은 일이 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삶을 함께 할 배우자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전문직을 가진 사람이라도 다 마찬가지이다. 주위에 참 괜찮은 사람인데도 적령기를 훌쩍 넘기고도 미혼인 경우가 꽤 많다. 특별히 독신주의가 아님에도 말이다.
법조인들은 낯모르는 분들로부터 괜찮은 배우자감을 소개하겠다는 전화를 종종 받게 된다. 3년 전 결혼한 어느 선배는 ‘같은 동향분이라 연락드려요’로 시작하는 중매 알선 문자들을 아직도 받고 있다. 법조인들의 신상은 대개 사법 연수원 수첩을 통해 공개된다.
연수원에 처음 입소해서는 다들 수첩을 펴놓고 미남 미녀를 찾아보고는 한다. 그래서인지 연수원 수첩 사진에 잘 나오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몇 번 씩 다시 찍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자 연수원생들 뿐만 아니라 남자 연수원생들까지 무심한척 하면서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만지고는 한다.
너무 신경을 쓰다가 실제 모습과 전혀 다른 사진이 찍히는 사례도 있다. 맞선 자리에 나아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다. 상대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장소 선택부터(주로 남자의 경우) 옷차림, 말투까지 세세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예의이다.
처음 맞선을 보고 나서 상대방의 반응을 접한 주선자를 통해 몇 가지 우려 섞인 조언을 받은 적이 있다.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표정관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상대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감정을 드러내놓고 표현을 하지 않은 것이 예의지만 지루하거나 피곤하다는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문제였다. 그 때는 맞선을 막 보기 시작한 터라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는 부분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맞선 상대가 같은 법조인인 경우는 문제가 더 커진다. 잘되면 다행이지만 안 좋게 끝난 경우 언제 어디서 다시 마주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면 만남의 기회가 많이 주어지면 원하는 짝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만, 맞선자리에서 배우자감을 만난 경우는 드물다. 주변 법조인들의 대부분은 중매가 아닌 연애로 맺어졌다.
그 중 가장 부러움을 사는 경우는 연수원 시절 함께 공부하면서 커플이 됐거나 오랫동안 만나온 연인과 결혼해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여자 합격생 숫자가 늘어난 이후부터는 사법연수원 안에서 공부와 연애를 함께 하는 이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것 같다. 부부가 되는 커플들도 있다. 사법원수원 다닐 때 우리 반 동기들도 나중에 세 커플이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70여명이 모인 한 반에서 여자 연수생이 30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꽤 높은 비율이다.
국내 최고 로펌에서 근무하는 한 지인은 스무 살에 만난 첫사랑과 10여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그는 특유의 입담과 능력으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변호사이다. ‘어떻게 10여 년 동안 한 명의 상대에게만 충실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도 들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그런 커플들이 많다. 그러고 보면 인연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한다. 그 세트 안에는 외모나 직업 같은 표면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인성, 가치관, 취향 등 내적인 요소가 모두 담겨 있다. 사람마다 저마다 다른 내용물을 담고 있는 만큼 각자의 향기가 난다. 누군가 매력이 있다는 것은 그 향기에 취한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에게 맞는 향기는 따로 있고 그게 바로 인연인 것 같다. 그렇다면 법조인들의 반쪽 찾기 역시 나에게 어울리는 향기를 가진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배우자는 소중한 인생을 같이 걸어 갈 동반자이다. 손잡고 함께 걸어가다가 힘들 때 서로 기댈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았다면 이미 반쯤은 인생의 성공을 이룬 게 아닐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