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새벽시장 두근거림 아직 잊지못해
서울컬렉션 론칭서 교수·MCM 지사장까지
심장 새로 뛰게하는 일 찾아 끊임없이 도전
트렌드는 자전거같아 나가지 않으면 쓰러져
고객 충성도 높일 '플러스 알파' 찾아야
지난 2011년 미국 뉴욕의 가을. 한영아(51·사진) 한글로벌어소시에이츠 대표는 한국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시아 최고의 명품 백화점을 만들어보자는 제의였다. 2005년 럭셔리 마케팅 회사인 '브랜드마케팅코퍼레이션(BMC)' 대표 시절, 명동 롯데에비뉴엘 컨설팅 이후 두 번째 롯데와의 인연이었다. 과거 '올드 리치(old rich)'가 강남 지역의 갤러리아백화점이나 현대백화점으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클래식 오브 클래식' '럭셔리 오브 럭셔리' 콘셉트를 지향했던 명동점과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10년이 흐른 지금 주요 소비층으로 급부상한 '영 럭셔리'와 중국의 VVIP를 겨냥한 새 판을 짜야 했다. 이후 한 대표는 시장 조사와 트렌드 분석을 바탕으로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의 위치, 현재의 이름, 타깃 소비자, VIP 관리, 층별 인테리어 및 상품 전략의 방향성 등 명품 백화점의 모든 노하우를 롯데 측에 전수하고 지난 1년간 새로운 패러다임의 명품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3년간의 준비 끝에 14일 베일을 벗은 롯데에비뉴엘 월드타워점의 총괄기획자 한 대표가 선택한 키워드는 '에지(edge)와 펀(fun)'. 이를 위해 그는 판타지와 웅장함, 화려함과 드라마틱함 등 아시아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요소는 다 넣었다. 에비뉴엘 입구에 설치된 비주얼머천다이징(VM)의 대가 더글러스 리틀이 참여한 '왕국의 유산' 테마의 층별 디스플레이와 전용 음악, 에비뉴엘 전용 시그니처 향기 등 월드타워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디테일한 요소가 모두 그에게서 나왔다. 명품 백화점이라고 해서 해외 브랜드로만 채우려 들지 않았다. 해외 브랜드가 범람하는 기존 명품관과 달리 '에지 있는' 한국 브랜드를 배치하되 세련된 터치로 판타지를 잃지 않게 했다.
"모든 럭셔리 브랜드가 이제 젊게 갑니다. 샤넬도 2,000달러 이하의 가방에다 미니백도 만들고 루이비통과 에르메스도 이제는 젊은 고객이 타깃이죠. 요즘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무서운 바잉 파워를 과시하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을 잡기 위해 안달인 거예요. 젊은 고객과 남성 고객층을 위한 제품을 강화하고 가격 저항감을 줄여 럭셔리 문턱을 낮춘 신규 브랜드를 대거 유치해 에너지가 넘치는 럭셔리 공간으로 만드는 데 주력했어요. 층이 올라갈수록 가볍고 재미있고 세련되고 에지 있는 느낌을 강하게 연출했죠."
명동 롯데에비뉴엘이 미국 뉴욕의 럭셔리 백화점 버그도프굿맨과 규모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그는 버그도프굿맨의 '퍼스널 쇼퍼' 개념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해 국내 처음 도입했다. 월드타워점에서도 1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퍼스널 쇼퍼 3명이 상주하며 VIP를 위한 상품 추천 및 스타일링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한 대표의 럭셔리 감각은 결정적으로 뉴욕 유학 시절에 최고급 백화점 버그도프굿맨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며 느낀 럭셔리의 진수를 켜켜이 오감에 저장시켜놓은 데 있다. 한 대표는 "뉴욕에서 유학할 때 샌드위치를 사 먹는 돈도 아까워 직접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살았지만 한두 푼씩 모아 100달러가 쌓이면 반드시 버그도프굿맨 백화점에 가서 스타킹 하나라도 샀다. 쇼핑하면서 부자들의 옷차림도 보고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지켜봤다. 백화점도 메이시·삭스피프스애비뉴·버그도프굿맨 등처럼 레벨이 다르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2005년 브랜드마케팅코퍼레이션 대표로 '럭셔리 컨설팅' 사업을 진행할 때 동원증권의 고객 40만명 중 40명에 불과한 VVIP 관리를 1년간 진행했다. 당시는 럭셔리 마케팅 개념이 없을 때였다. 40명에게 꽃을 보낼 때도 모두 다르게 했고 냅킨에 고객의 이름을 새기고 리본 하나, 포장 하나까지 디테일에 신경 써 감성과 럭셔리를 적절히 섞어 깊은 감동을 주는 마케팅의 대가로 입소문이 났다.
한 대표는 어릴 때부터 옷을 너무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처음 가본 남대문 새벽시장의 두근거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용돈을 아껴 목돈이 되면 언제나 남대문을 찾아 옷을 사고는 했다. 패션에 관심이 많던 그는 이화여대 장식미술학과를 택했다. 그러나 패션 디자이너의 길은 생각하던 바와 달랐다. 이는 자기와의 싸움이 절대적인 장인의 길이었다. 대학 내내 장학금을 타며 '열공'했지만 마음을 잡지는 못했다.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게 무엇일까. 한 대표는 방학 때면 서비스직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은행에서 인사하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인테리어는 물론 병원에서 벽에 그림을 그리는 일도 해봤다.
가슴 뛰는 일을 찾지 못한 채 1987년 한국 1세대 디자이너 진태옥·지춘희 등이 만든 패션쇼 매니지먼트 등을 진행하는 '더패션그룹' 사무국장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때 패션이 디자인만 있는 게 아니라 패션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뒷받침하는 프로모션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한 대표는 막연히 패션 비즈니스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당시 한국에는 패션 마케팅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모든 것을 정리하고 뉴욕 패션스쿨 FIT로 날아갔다. 새 학교에서 배운 것은 '바잉 앤 머천다이징'. 상품의 수량을 정하고 예상해야 하는 일, 바로 수와의 싸움이었다. 이것도 아니었다. 다시 뉴욕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이름 모를 대학을 찾아 패션 마케팅 매니지먼트를 수학하며 패션산업과 관련한 학문적 기초를 쌓았다.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1993년 뉴욕에서 돌아온 한 대표는 1~2년 뒤 유행할 컬러와 디자인을 예견하고 이를 산업에 접목하는 국내 최초의 '패션 포캐스팅' 회사인 인터패션플래닝에 들어갔다. 패션의 나라 프랑스의 경우 이 같은 패션 포캐스팅 서비스는 이미 120년 전인 1894년에 시작됐다. 한 대표는 "1990년대 한국 패션이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외국의 디자인을 빌리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면서 인터패션플래닝이 설립됐다"며 "유럽의 5개 도시를 돌면서 조사한 트렌드를 1년에 두 차례 분석해 발표하며 한국 패션산업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DNA를 생산하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인터패션플래닝은 한국 패션의 성장기에 엔진 역할을 했고 그 중심에 한 대표가 있었다.
한 대표는 지금껏 장기간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자신의 심장을 새롭게 뛰게 해줄 참신한 일에 꽂히면 미련없이 박차고 나와 도전을 서슴지 않았다. 1년반이 지났을까. 대구시가 '밀라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사이 계명대가 패션 분야에서 실무경험이 있고 신선한 경력을 가진 교수로 그를 채용했다. 새로운 학과를 만들고 학생을 가르쳐봤지만 역시 교수도 원하는 핵심을 비켜갔다. 그는 또 새로운 심장을 찾기 시작했다.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이번에는 7곳의 대기업이 출자해 만든 여성 전문 마케팅 회사 '여자닷컴'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패션과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담당했다. 이때 총괄디렉터로 제1회 서울패션위크를 기획하고 론칭한 후 나중에 고건 시장에게 건의해 세계적 패션쇼인 '뉴욕컬렉션'이나 '파리컬렉션'처럼 이름도 제대로 '서울컬렉션'으로 바꿨다. 한 대표는 "당시 컬렉션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 처음으로 이를 도입해 한국 패션쇼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견주는 초석이 됐다"고 전했다.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2002년에는 첫 사업체인 브랜드마케팅코퍼레이션 대표로 일하며 명동에비뉴엘점을 론칭했다. 당시 클라이언트가 롯데백화점·MCM·동원증권 등이었는데 김성주 MCM 회장의 삼고초려로 한 대표는 사업을 접고 MCM 뉴욕지사장으로 다시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다. MCM을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국은 당시 라이선스로 시작해 한계가 있었어요. 아예 해외에서 럭셔리 전략을 펼치며 그 자료를 역으로 한국으로 보냈죠. MCM 로고는 제가 들어갔을 때 천대 받고 있었습니다. 전 로고의 가능성을 보고 지금의 MCM을 있게 황토색 컬러와 패턴에 '꼬냑 비세토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를 MCM의 아이콘으로 만들었죠. 또 헤리티지와 역사를 심어주기 위해 MCM의 상징인 골드 브레스 플레이트(MCM 고유 로고판)도 만들었어요." 즉 한 대표는 MCM의 핵심 역량을 찾아 정체성을 형상화하는 데 앞장섰고 브랜드의 판타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럭셔리 마케팅의 대가, 한 대표가 말하는 럭셔리 브랜드란 무엇일까.
"고객들이 상품을 사고 구매한 상품을 통해 값진 프라이드를 느끼게 해주는 브랜드가 바로 명품이죠. 섬세한 디테일과 좋은 품질을 바탕으로 자기 브랜드 고유의 스토리텔링과 판타지를 만들어내고 남들과 조금 다른, 그러나 확실하게 전달되는 내 브랜드의 DNA를 자신감 있게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근사한 비주얼로 전달해낼 때 바로 명품이 되는 것입니다." 한 대표는 또 섬세한 디테일이 브랜드의 명품화를 이룬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품을 이루는 패키지가 30% 이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쇼핑백 손잡이까지도 신경 써야 한다"며 "해외 명품 브랜드의 쇼핑백 손잡이는 하나같이 두껍다"고 귀띔했다.
한 대표는 요즘 미국과 중국을 넘나든다. 해외 기업들마저 그에게 럭셔리 마케팅을 자문해오고 있어서다. 특히 중국을 오가면서 느낀 점은 중국의 럭셔리 시장 성장속도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중국인 고객에게 충성도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쉽게 싫증을 내는 그들의 성향을 간파해 새로운 '플러스 알파'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가 갖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가진 것에 중국을 고려한 좀 더 미래지향적인 무언가를 보태 중국을 공략해야 합니다. 한국 기업들이 있는 것 가지고 그대로 나가면 노하우는 다 빼앗기고 빈털터리가 될 수 있어요. 트렌드는 두발 자전거예요.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쓰러집니다. 우리의 수준을 높이면서 같이 가야지, 있는 그대로 나가면 유통시간이 짧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 한영아 대표는 △1963년 서울 △1987년 이화여대 미술대학 장식미술학과 패션디자인 졸업 △1991년 뉴욕 패션학교 FIT, 패션 바잉 앤 머천다이징 전공 △1993∼1995년 인터패션플래닝 정보기획 팀장 △1996∼1999년 계명대 미술대학 패션학부 조교수(학부장) △2000∼2004년 BMC 대표 △2005∼2010년 성주그룹 MCM 뉴욕지사장 및 글로벌 마케팅 디렉터 △2011년∼ 애술린 아시아지사장 및 애술린코리아 파트너 △2012년∼ 한글로벌어소시에이츠 대표 |
명품 브랜드북 제작… 글로벌 문화·예술 트렌드 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