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發 경기침체때 'V'자형 회복 역사 없어
유럽 재정위기 이제 시작 일부 디폴트 선언 불가피
中도 경기 사이클로 볼때 심각한 위기 겪을 가능성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 세계에 韓 입지 굳힐 기회
"역사적으로 보면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는 데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미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주택시장의 경우 회복되는 데 10년 정도 걸릴 정도로 매우 더디게 경제가 회복될 것입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의 미국 경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보수적 경제학자의 비관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남유럽 재정위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 만큼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일부 유럽 국가의 디폴트 선언은 불가피하다"고 단언했다.
로고프 교수는 "중국 역시 경기 사이클로 볼 때 한번쯤은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해 말 과거 66개국에서 일어난 금융위기를 분석한 역작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를 펴냈다. 로고프 교수는 "중국은 다를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중국이 거품관리 능력에 관한 한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미국은 경기회복이 더딘 탓에 앞으로 1~2년 뒤 보호무역의 유혹에 빠질 수 있으며 이것은 정말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길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미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이 나오는데요.
▦금융위기의 역사를 추적해보면 금융위기발 경기침체 직후에는 강력한 'V'자형 회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는 월가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낙관적인 관점에서 "경기침체가 끝났다"고 말했을 때도 여기에 동의한 적이 없었습니다. 느린 회복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택가격은 현재보다 더 떨어질 것이고 아마 주택시장이 회복되는 데는 10년 정도가 걸릴 것입니다. 주식시장 회복은 이보다 빠른 2~3년 정도 뒤라고 예상합니다.
-FRB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약 1%로 전망하는데 디플레이션 리스크가 높아지는 것은 아닌지요.
▦디플레이션은 미국보다 유럽에서 더 큰 리스크입니다. FRB는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이용할 줄 알고 또 그렇게 할 것입니다. FRB는 일본의 경험을 잘 알고 있습니다. FRB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주 강력하게 디플레이션을 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은행세'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있는데요.
▦미국과 영국은 G20 회원국들이 모두 은행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렇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다른 규제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영국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계속 유리한 위치를 고수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좌우하고 지배합니다. 그런데 두 나라만 은행세를 도입하게 되면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에 똑같이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죠.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다른 나라의 움직임과 관계없이 당장 은행세를 도입해야 합니다. 더 기다린다면 다시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두 나라는 금융위기의 진원지입니다. 따라서 세계 다른 나라들은 미국과 영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많은 안전판을 마련하도록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유로존의 운명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해체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많은 변화가 뒤따를 것입니다. 가입을 기다리는 동유럽 국가는 아마도 수십 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국가들은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합니다. 그리스는 지금 당장 탈퇴해야 하고 포르투갈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로존 멤버로서 경쟁력이 없는 스페인에도 탈퇴를 권유하고 싶습니다. 일시적으로 유로존을 탈퇴해 자국 화폐를 평가절하하는 길 외에는 해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이들을 구제하는 데 수천억달러가 투입될지도 모릅니다. 유럽 재정위기는 이제 막 시작단계여서 아무도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유럽 일부 국가들의 경우 디폴트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는데요.
▦내가 만나본 상당수 유로존 고위관계자들은 "디폴트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우리가 가진 데이터를 보면 그리스는 지난 1829년 독립 이후 절반의 시간 동안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스가 국가부도를 맞는다는 것은 그렇게 과격한(wild)한 상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유럽에서는 국가 디폴트를 선언하는 나라가 몇 개국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스와 포르투갈, 어쩌면 스페인까지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들 3개국이 유로존을 탈퇴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유럽 국가들이 디폴트를 선언한다면 세계 경제에 치명타를 가져오지 않을까요.
▦그리스와 포르투갈이 디폴트를 선언한다면 그 영향은 미미할 것입니다. 세계 경제는 지난 100년간 숱한 국가 디폴트를 경험했지만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스페인이 디폴트를 선언한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ㆍ영국까지 안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디폴트는 그다지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아닙니다. 디폴트가 일어나더라도 스페인의 몇몇 지방정부에 국한될 것입니다. 이 정도라면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고 아시아의 성장세도 계속될 것입니다.
-미국도 재정위기의 안전지대는 아닐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미국은 어려운 고민을 마지막까지 남겨두는 버릇을 갖고 있습니다. 아주 큰 실수죠. 돈을 써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입니다. 미국은 현재 유럽보다는 나은 입장이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상황도 아닙니다.
미국은 그리스와 같은 운명을 밟지는 않겠지만 더 약한 강도로 그리스와 비슷한 위기를 겪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재정위기가 다가올 것입니다. 미국의 부채 수준을 본다면 앞으로 경제성장률을 1%는 갉아먹을 것입니다.
-금융위기를 다룬 '이번엔 다르다'라는 저서에서 제목에 담긴 의미는 뭔가요.
▦책을 같이 펴낸 카르멘 레인하트 교수가 아시아 외환위기 이전에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아시아담당을 맡고 있었는데 그가 직접 아시아에서 들은 이야기에서 착안한 제목입니다. 레인하트 교수는 당시 "아시아는 저축률이 높고 금융시장이 세계화된 만큼 '이번엔 다르다'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금융위기가 발생할지 몰라도 아시아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죠. 고정환율제도 등 외환위기를 초래한 특이한 원인도 작용하기는 했지만 리스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한 점은 아쉬운 일입니다.
-중국 경제는 큰 위기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지금까지 경제를 잘 관리해왔습니다. 하지만 점점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경기 사이클에 따라 좌우되는 평범한 경제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중국의 금융회사는 매우 취약합니다. 확실히 어느 순간 심각하고 큰 경기침체를 경험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금융 시스템이 흔들릴 것이고 더 큰 금융위기로 번질 위험이 있습니다. 과거 모든 이머징마켓이 그랬습니다. 이머징마켓은 극단적인 경기 사이클을 보입니다. 중국은 많은 강점을 가지고 있고 뛰어난 리더십을 보유하고 있지만 경기 사이클을 관리하는 데는 (부동산 거품을 야기한) 그린스펀 전 FRB 의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중국 경제를 버블 상황이라고 보시는지요.
▦솔직히 말하면 중국의 (경제) 데이터는 너무 엉망입니다. 그래서 정확히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자산버블은 있는 것 같습니다. 금융위기를 맞으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자산버블이 생기고 보다 많은 부채가 쌓여야 하는데 중국이 얼마나 많은 버블과 부채를 안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듭니다.
-중국 경제의 불균형이 세계 경제를 위협할 것으로 봅니까.
▦중국은 앞으로 15년 이내에 불균형을 시정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식으로 수출을 계속 늘리려면 아마 화성에도 수출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중국의 변화시기를 가늠하기 힘들지만 보다 서두르는 게 중국에도 좋을 것이라고 봅니다. 중국은 물건을 너무 싼 가격에 세계 시장에 팔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습니다. 이런 수출이 중단됐을 때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수출을 5년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다짐했는데 새로운 무역전쟁을 촉발하지는 않을까요.
▦굉장히 바람직한 목표이기는 하지만 '두 배'라는 수치는 뜬구름 잡기나 마찬가지입니다. 무역전쟁을 벌이겠다는 뜻으로 얘기한 것은 아닌 것으로 봅니다. 보호무역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앞으로 1~2년 후에는 보호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상황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미 행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수출진흥 전략의 일환으로 삼고 있는데 조만간 FTA가 비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그렇게 되기를 강력히 바라고 있습니다. 한국처럼 가까운 동맹국과의 FTA 비준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도 한국이 미국의 친구라는 것을, 또 친구를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자유무역 옹호론자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그는 자유무역에 대해 매우 복잡한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가 FTA 체결을 강력히 주장하는 쪽으로 마음 먹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비준시기를 묻는다면 그 답을 내놓기는 어렵습니다.
-11월 서울에서 G20 회의가 열립니다. 어떤 논의를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이머징마켓이 회의를 주관한다는 것은 역사적인 일이고 모두 기대가 큽니다. 동시에 한국으로서는 아주 중요한 기회입니다. 세계 무대에 한국의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G20의 가장 중요한 사안은 역시 금융규제의 틀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1년 전쯤 G20은 많은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정치인들은 대체로 돈 쓰는 걸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어렵습니다. 이제부터는 재정투입을 멈출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황이 훨씬 어려워졌습니다. 환경과 기후 문제도 G20이 다뤄야 한다고 봅니다.
●케네스 로고프는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내 실물과 이론에 모두 밝은 금융 전문가로 세계적 석학이다. 그는 "경제학자들이 이론에 너무 치우쳐 경제위기의 예측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해왔다. 그는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말 과거 800년간 66개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를 객관적 데이터로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라는 역작을 펴냈다. IMF 동료였던 카르멘 레인하트 메릴랜드대 교수와 함께 7년간의 작업 끝에 완성했다. 그는 이 책에서 "은행의 위기는 국가 디폴트 위기로 이어졌다"며 금융권의 과다한 부채와 레버리지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곧 번역판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1953년 뉴욕주 로체스터 ▦1975년 예일대 경제학과 ▦1980년 MIT 경제학박사 ▦1989~1991년 UC버클리 경제학 교수 ▦1992~1994년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 ▦2001~2003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2003년~현재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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