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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수첩공주'라고 불렀고 본인은 '원칙공주'라고 칭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별명 얘기다. 눈길이 가는 것은 수첩도 원칙도 아니다. 그 뒤에 한결같이 붙는 '공주'라는 단어다. 실제 열흘 남짓 박 전 대표를 동행 취재해 보니 그는 의전(儀典)과 격식이 몸에 배어 있는 공주와 흡사했다. 예컨대 네덜란드 항만청장이 인사로 가벼운 포옹을 하려 하자 박 전 대표는 움찔한 채 외교 예절에 따라 악수로 대응했다. 포르투갈에서 기자들과 10분간의 호프타임을 끝내려 할 때는 대변인 역할을 하는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이 대신 "대표님 일정이 많으니 오늘은 여기서 마치자"고 나섰다. 그리스 기자 간담회에서 '귀국 후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박 전 대표는 주저한 채 이정현 의원이 설명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박 전 대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원인을 이렇게 짚는다. 최고 권력자의 자녀로 공주처럼 컸으니 사회 생활을 해보았겠냐는 것이다. 이는 '박 전 대표는 벽이 있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콘텐츠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친 박근혜계 의원들은 반박한다. 박 전 대표의 삶을 보면 그가 대중 속에 뛰어들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부모와 본인에게 신체적인 위협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비판은 듣지만 대안이 없는 비난은 들을 수 없다고도 했다. 콘텐츠에 대해서는 대선이 시작하면 보여줄 것이라고 한다. 친박계 의원들도 박 전 대표의 삶이 보통 사람에게 거리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의 소신이 누군가엔 고집으로 비치는 점도 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란 갑자기 바꿀 수 없는 나이테와 같다. 시대가 그런 그를 원하면 될 것이고 아니라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선거는 흔히 51대49의 싸움이라고 한다. 하지만 51이 그를 선택하더라도 나머지 49를 최소한 이해시켜야 차기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 49가 그를 공주 아닌 지도자로 인정할 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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