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지분매각 추진에 대해 재계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작업에 본격적인 시동을 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계열사 간 합병을 잇따라 진행하는 등 경영권 승계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물밑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이 같은 움직임은 앞서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진행한 삼성그룹과 맞물려 재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차그룹 내에서는 여전히 "지배구조 개편과 무관한 작업"이라고 선을 그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공정거래법 규제 취지에 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지난해 계열사 잇단 합병, 현대글로비스 사업 확대=현대차그룹은 지난 한 해 동안 잇따라 계열사 간 합병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 1월 현대제철의 현대하이스코 냉연부문 합병에 이어 4월에는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을 통합했다.
현대제철 합병 직후 정 회장이 현대제철 사내이사직에서 사임한 것을 두고도 재계 일각에서는 "정의선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현대제철 사내이사직을 맡고 있다.
이와 함께 11월에는 현대위아에 현대위스코와 현대메티아가 흡수 합병되기도 했다. 이처럼 숨 가쁘게 진행된 계열사 합병 작업의 중심에는 정 부회장이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위스코의 지분 57.9%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합병으로 현대위아의 지분 1.95%도 함께 보유하게 됐다.
현대차그룹이 정 부회장 체제로 승계 구도를 마무리 지으려면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해야 한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거론되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는 정 부회장이 기아차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16.9%, 4조7,000억원선)을 확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순환출자구조 해소와 정 부회장의 후계구도 확립을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비용이 필요하다.
최근 이어진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합병과 정 회장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추진이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면서 후계구도 승계를 위한 실탄 마련 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8월 정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이노션 지분 30%를 3,000억원에 매각한 것이나 현대글로비스가 ‘몸집 불리기’ 차원에서 지난해 11월 유럽의 육상 운송업체인 아담폴을 인수한 것 모두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작업이라는 게 투자은행(IB) 업계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무관"=반면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는 재계의 이 같은 분석에 극도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삼성그룹과 달리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며 최근의 어떤 작업도 경영 승계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그룹 측의 공식 입장이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내부거래 규제를 강화한 공정거래법의 개정 취지에 부응하기 위한 조치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공정위가 지난 2013년 공정거래법과 지난해 초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상장회사 중 특수관계인(지배주주 및 그 친족)이 보유한 지분이 30%(비상장사 20%) 이상인 계열회사와의 거래 등을 통해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할 경우 이익제공기업과 수혜기업은 물론 특수관계인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정 회장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주식매각은 공정거래법상 계열사 지분 30% 규제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순으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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