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의 제자 성추행에 이어 대학 내 학우 간에도 성범죄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16일 대학가에 따르면 최근 국민대 한 학과의 남학생들만으로 이뤄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여학우들의 사진을 띄워놓고 한 명씩 성희롱 발언을 한 사실이 밝혀진 데 이어 서울대에서는 3년 전 한 학과의 동기 MT에서 남학생들이 단체로 여학우들을 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대학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입학한 새내기들이 성범죄의 위험에 무방비하게 놓여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연지(19·가명)양은 재수 끝에 올해 서울의 유명 사립대에 입학해 어엿한 15학번 새내기가 됐다. 대학생이 되면 모든 것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어 즐거울 줄 알았지만 걱정이 크다. 몇 번의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해보니 뒤풀이 자리에서 선배들이 술을 강권하는 것은 물론 술 게임을 할 때 원하지 않는 스킨십까지 해야 했다. 싫어도 티를 내지 못하는 것은 혼자서 빼는 모습을 보이면 대학 생활 시작부터 이미지를 망친다는 선배의 조언 때문이다. 당장 이달 말에 2박3일로 진행되는 새내기 새로배움터에서도 선배들이 무리한 요구를 할까 걱정이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참석 신청을 했다.
새내기들이 선배들과 학교 밖을 벗어나 대학 생활을 미리 맛보고 적응을 돕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새터와 MT 등이 학우 간 성범죄의 취약지대가 되고 있다. 프로그램의 내실을 가하기보다는 술 문화가 우선시되면서 동기 간에도 성추행 등 성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지난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대 여성연구소에 의뢰한 대학생 성희롱·성폭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280건의 학내 성범죄 중 발생장소는 술집 등 학외 유흥공간이 15%에 해당하는 43건으로 가장 많았고 학내 공공장소(22건), MT·수련회 등 숙박시설(20건) 순으로 나타났다.
학외 유흥공간이나 공공장소처럼 일상적으로 학생들이 찾는 공간이 아님에도 MT나 수련회가 유독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은 합숙하는 과정에서 성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신입생의 경우 선배들이 쌓아놓은 문화에 적응해야만 하는 약자가 되기 때문에 더욱 성범죄에 취약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MT 등에서 술 게임이 벌어지는 분위기에서는 집단의 놀이문화에서 소외되기 싫기 때문에 성희롱 위험이 있더라도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성희롱 위험이 있을 때 명확히 의사를 표현하라는 조언은 현실성이 낮다는 게 이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단체로 참석하는 행사의 경우 집단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문화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쉽게 집단에 반대되는 의사를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만성적인 학내 성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교수·교직원 등 학교당국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반성폭력 강좌를 새터에 참가하는 재학생에게도 확대해 예방장치를 만들어둬야 한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사립대 성평등센터 관계자는 "사실 학교에서는 MT 등의 학생 주최 행사에서의 성범죄는 우발적인 사고로 치부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합의로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다"며 "학교에서 학생 간 성범죄 등에 강력한 책임을 묻는 등의 분위기 변화가 먼저 있어야 성범죄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범죄의 심각성이 우리나라 대학 사회에서는 너무 간과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교육법 수정안 제9조에 학생에 대한 성희롱을 금지하고 있다. 이 조항을 교육부 민권사무국에서 집행해 누구든 성범죄로 피해를 입으면 대학 내 절차 없이도 민권사무국에서 절차를 밟을 수 있고 대학 내에서 성범죄를 소홀히 할 경우 재정지원에 제한까지 둔다. 이 연구위원은 "성범죄는 이미 발생한 순간 학생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며 "총장을 비롯한 대학당국과 교육부에서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더욱 강한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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