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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화신’ 우리가 사는 세상

돈이 있을 때만 정의로워지는 씁쓸한 세태 보여줘 <br>스타 없이 연기·스토리의 힘과 주제의 무게로 시청률 16.8%로 어제 종영


2010년 정의 신드롬을 일으킨 마이클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이제 잊혀지는가 했더니 SBS 특별기획 드라마 ‘돈의 화신’이 돈과 정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규정하면서 다시 한번 ‘정의’라는 화두를 드라마에서 꺼냈다.

스타의 힘이 아닌 탄탄한 스토리의 힘과 주제의 무게로 ‘돈의 화신’은 시청률 16.8%(닐슨코리아 기준)로 어제 종영했다.

‘돈의 화신’이 시청자에게 주고자 했던 메시지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4회분(2월 10일 방송)이었다. 그리고 4회의 다음 장면은 ‘돈의 화신’의 하이라이트이자 백미다.

이중만(주현 분) 회장 살해사건에 가담한 지세광(박상민 분) 검사, 권재규 사법연수원 교수, 황장식 변호사, 고호 보도국장은 우연히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이중만 회장 살해에 가담하고 큰 돈을 벌었지만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황장식은 지세광, 권재규, 고호와 적대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 셋과 마주치게 된 황 변호사는 지세광에게 “자네가 검찰계에 로빈후드라며? 나는 자네가 돈만 밝히는 악질 변호사가 될 줄 알았어. 근데 검사가 됐어. 그것도 온 국민이 신뢰하는 정의로운 검사”라고 말하며 비웃는다.

그러자 권재규는“요즘 황변 욕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 양심 팔아먹으면서 권력에 빌붙어 기생충처럼 산다고”라며 지세광 편을 든다.



이에 황 변호사는 또 “나는 과거에도 나쁜 놈이었고 현재도 나쁜 놈이야. 그런데 나처럼 차라리 일관성있는 게 낫지 않나? 살인마들이 정의로운 검사인척 사법연수원의 고상한 교수님인척 정직한 언론인인척 양심을 팔아먹고 있는 건 당신들이야 안 그래?”라며 그들이 지킨다는 ‘정의’에 씁쓸한 정의로 일갈한다.

‘돈의 화신’에서 정의로운 자들은 오직 ‘돈’을 가졌을 때만 정의롭다. 돈이 없던 시절에는 돈을 좇고 돈이 생기는 순간 정의로워진다. 검찰계의 로빈후드 지세광 검사도 돈이 없던 시절에는 이중만 회장을 죽였지만 그가 죽고 그의 재산을 손에 넣자 정의로운 사람으로 변신한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약자인 이차돈도 정의를 위해 악의 축과 같은 지세광 일파를 처벌하려 하지만 이는 정의라기보다는 부모 죽인 원수를 갚는 개인적 복수의 의미가 강하다. 이차돈은 이중만 회장 살해 사건을 제3자 검사로 맡게 된다면 정의의 이름으로 이 사건을 수사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지세광이라는 부장 검사가 연루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만큼 그는 사회적으로 정의롭지는 않다. 그는 검사 시절 뇌물과 비리로 막대한 재산을 불렸지 않나.

‘돈의 화신’ 이 정의와 양심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돈이 있고 없고에 대한 차이로 힘들어하지 않았던 권재규의 아들 권혁 검사와 사법연수원 교수의 딸이자 판사인 전지우는 정의와 양심을 택했다. 권혁은 아버지가 연루됐을지 모르는 지세광의 스위스 비밀계좌를 추적하고, 전지우는 약혼자 지세광의 스위스 은행 거래 명세서를 없앨 수 있었지만 증거로 남도록 결정한다. 돈에 찌들어 본 적이 없는 두 인물만이 정의와 양심을 처음부터 고수한다는 것, 이는 ‘돈의 화신’식 씁쓸한 희망이다.

이렇듯 양심의 한 종류인 ‘정의’는 돈이 있을 때만 발현된다는 씁쓸함이 ‘돈의 화신’을 관통하는 주제다. 이 씁쓸한 주제에 반대할 이가 많지 않다는 것, 이것이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세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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