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정치권에서는 마스다 히로야라는 전직 관료가 쓴 논문이 화두다. 아베 신조 1차 내각 당시 총무상을 지낸 그가 지난해 12월 한 월간지에 실은 '2040년, 지방 소멸. 극점사회가 도래한다'라는 이 논문은 '아베노믹스'의 취기에서 깨어나기 시작하고 있던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논문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데 더해 그나마 지방의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오는 2040년에 이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약 30%가 사라진다는 암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소멸 가능한 도시는 전체의 절반에 달한다. 결국 도쿄가 '블랙홀'처럼 인구를 빨아들이며 '극점(極點)'이 형성되고 마침내 일본의 국가 존립마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 요지다.
이러한 전망은 증시부양과 물가상승에만 '올인'하던 아베 신조 총리에게도 부담이 됐던 모양이다. 지난달 마스다 전 총무상이 논문내용을 토대로 연구결과를 발표한 무렵부터 아베 정권은 장기적인 인구감소 대책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특히 '소멸 가능성 도시'에 자신의 고향인 야마구치현 나가토시가 포함된 사실을 알고 아베 총리는 제법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아베 정권은 이달 말 발표하는 성장전략에 인구 유지라는 장기 정책목표를 새로운 축으로 끼워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산 고령화와 그에 따른 인구감소라는 이슈에는 이미 이골이 났을 일본 사회에서 마스다의 논문이 이토록 파급효과를 발휘한 것은 물론 내용이 그만큼 비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가올 위험을 사람들이 실감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충격적인 수치도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스다의 전망이 유독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은 일본 사회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전조 때문이다. 요즘 일본의 외식업체들은 아르바이트생을 못 구해서 난리다. 시급을 아무리 올려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문을 닫는 점포도 속출하고 있다. 경기회복과 임금상승이 인구감소와 맞물려 초유의 인력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언론에서는 장기적인 인구 문제를 고려한 새로운 아베노믹스의 틀을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주가연동정권'으로 불릴 만큼 단기적인 증시부양 목표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던 아베 총리가 인구 문제라는 일본 사회의 근본적인 리스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지금이라도 인구 문제를 중시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이미 인구감소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우리는 어떤가. 이웃 나라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습을 '남의 일'이라고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2021년부터 노동력 부족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 못지않게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직면하는 나라다. 일본의 암울한 미래상은 언젠가 한국이 맞닥뜨릴 미래상이기도 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론이 바뀔 때마다 조변석개하는 정책들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인구 문제에 우리도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신경립 국제부 차장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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