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임금협상 타결이 추석 이후로 미뤄지면서 예상을 뛰어넘는 노조의 강수에 대한 다양한 원인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산업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알려진 사실과 달리 현대차 일부 근로자가 통상임금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노조를 강경투쟁 모드로 이끌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사측은 80%에 가까운 대다수 근로자들이 받는 상여금에 고정성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논의를 서둘러야 할 시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9,500명 vs 3만5,000명=3일 서울경제신문 취재 결과, 현대차의 판매(6,800명)와 정비(2,700명) 부문에서 근무하는 조합원 9,500명에게 지급되는 상여금은 정기성·일률성·고정성 등 통상임금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 내에서 판매·정비를 담당하는 회사였던 현대자동차써비스가 지난 1999년 현대차에 흡수·합병된 조직이다. 현재 판매·정비 부문의 조합원이 받는 상여금 지급기준이 현대차의 다른 근로자와 상이한 것은 이들이 합병 전 회사의 관련 세칙을 그대로 적용받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자동차써비스의 세칙에는 현대차와 달리 '(상여금 지급 기간인) 두 달 동안 15일 이상 일한 경우에만 상여금을 지급한다'는 규정이 따로 없었다.
지난 1월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바탕으로 발표한 노사 지침에서 △재직자에게만 상여금을 주는 경우 △일정 근무 일수를 채워야만 상여금을 주는 경우 모두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판단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80%에 가까운 현대차의 나머지 조합원들은 모두 고정성이 없는 상여금을 지급 받고 있다.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제기해놓은 23명의 현대차 근로자들 역시 전부 판매·정비 분야와 무관한 조합원들이다.
사측이 지난 2일 교섭에서 내년 3월까지 관련 논의를 이어가자는 다소 진전된 안을 노조에 제시했음에도 여전히 통상임금 확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이처럼 법적 정당성의 측면에서 사측이 노조보다 우위에 서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 "소모적인 통상임금 논쟁 벗어나 임금체계 개편 서둘러야"=전문가들 역시 고정성이 없으면 통상임금 범위를 유지하고 요건을 갖췄으면 통상임금을 확대하는 단편적인 처사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통상임금 범위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기형적인 임금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조사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장 978개소의 임금체계에서 기본급 비중은 평균 57.3%에 불과한 실정이다. 임금의 절반가량은 복잡한 수당과 상여금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현대차 생산직 역시 일부 라인의 경우 수당만 14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고정성이 없는 상여금을 폐지해 임금체계 개편의 첫발을 뗀 만도의 최근 노사합의가 본보기가 될 만한 사례"라며 "현대차 노조 역시 투쟁을 접고 사측과 함께 선진화된 임금 구조를 갖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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