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골프에서 장비의 발달과 웨이트트레이닝 등으로 40대 골퍼가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어니 엘스(43∙남아공)는 30대 후반 거듭된 부상과 가정 문제를 이겨내고 재기했기에 우승이 더욱 빛났다.
엘스의 '골프 늦바람'의 비결은 나이가 들어도 몸에 무리가 없는 교과서 스윙과 부드러운 표정 속에 숨겨진 강인한 심리로 요약된다.
키가 191㎝나 되는 그는 힘들이지 않고 물 흐르듯이 치는 스윙 덕분에 '빅 이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엘스는 완벽한 어깨 회전과 뛰어난 리듬을 열쇠로 꼽는다. 그는 "백스윙 때 팔이 아닌 어깨를 회전시키는 것이 힘을 충전하면서도 클럽을 스윙면 위로 유지해 똑바로 멀리 칠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 "어깨 회전은 어드레스 때 왼팔의 이두박근을 가슴 쪽 몸에 붙인 상태로 유지하면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윙 리듬을 위해서는 백스윙을 최대로 완료한 뒤 다운스윙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왼쪽 어깨가 볼의 뒤쪽에 왔을 때를 백스윙 완료 기준으로 삼으면 좋다고 설명했다.
엘스는 지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타이거 우즈(37∙미국)와 라이벌 구도를 이뤘지만 한때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2005년 7월 가족과 함께 요트를 타다가 왼쪽 무릎을 다치는 등 크고 작은 부상으로 내리막 길을 걸었다. 더욱이 심한 자폐를 앓고 있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영국 런던에서 미국 플로리다주로 이주했을 만큼 마음고생도 해야 했다. 하지만 재기를 다짐하며 훈련에 매달린 끝에 감격을 누렸다.
엘스는 2년 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2승을 거두며 제2의 전성기를 예고하더니 마침내 10년 만에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를 다시 들어올렸다.
엘스는 23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영국 랭카셔주의 로열리덤&세인트앤스GC(파70∙7,086야드)에서 막 내린 제141회 브리티시 오픈(디 오픈)에서 우승한 뒤 "아무도 내가 다시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3라운드까지 선두 애덤 스콧(32∙호주)에 6타나 뒤진 채 공동 5위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엘스는 버디 4개, 보기 2개로 2타를 줄여 합계 7언더파 273타의 성적으로 정상에 올랐다.
이날 경기 막판까지도 엘스의 우승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전반에 2타를 잃고 후반 4타를 줄이며 먼저 경기를 마쳤다. 반면 4타 차 선두로 출발한 스콧은 전반 2타를 잃은 뒤 14번홀(파4)에서 버디를 성공시켜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에 쐐기를 박는 듯했다. 그러나 극도의 긴장감이 몰려온 듯 별안간 흔들렸다. 15번홀부터 18번홀까지 4연속 보기로 무너져 내린 것. 마지막 홀을 파로 막았다면 연장전에 갈 수 있었지만 1.5m 퍼트를 놓치며 메이저대회 마지막 라운드 재앙의 주인공 대열에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메이저 통산 열다섯 번째 우승에 재도전했던 우즈는 공동 3위(3언더파)에 그쳤다. 최경주는 공동 39위(5오버파), 배상문은 공동 64위(9오버파)로 마감했다.
한편 1989년 프로로 데뷔한 엘스는 1994년과 1997년 US 오픈에서 정상에 올라 '원조 황제' 잭 니클라우스(73∙미국)의 뒤를 이을 '황태자'로 불리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2002년 스코틀랜드 뮤어필드 골프장에서 열린 디 오픈에서 우승한 그는 꼭 10년 만에 다시 클라레 저그(은제 주전자 형태의 디 오픈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메이저 4승을 포함해 미국 PGA 투어 통산 19승째를 거둔 그는 지난해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 우승상금 140만5,890달러(약 16억원)를 받은 그는 "나도 메이저 우승 기회를 날린 경험이 있다. 스콧이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콧은 "실망스럽지만 엘스는 존경하는 선수이고 친한 친구다"라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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