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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2월16일] 윌리엄 페티


파란만장ㆍ승승장구. 통계학과 경제학의 씨앗을 뿌린 윌리엄 페티(William Petty)의 삶은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하다. 가난한 의류업자의 아들로 1623년 태어난 그의 출발은 견습선원. 다리가 부러져 프랑스에 머물 때 라틴어와 외국어를 익혔다. 귀국 후 잠시 해군사관생도로 지내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의학을 공부할 때는 돈이 없어 3주간 호두만 먹고 산 적도 있었지만 1649년에는 의학박사 학위를 따냈다. 옥스퍼드대학 해부학 교수로 재직할 때는 명의로 이름을 날렸다. 교수형을 당해 사망진단을 받은 여인을 살려낸 적도 있다. 경제를 공부하게 된 계기는 아일랜드 원정. 크롬웰 군대의 수석군의관으로 1652년 아일랜드에 파견된 그는 몰수할 토지의 가치를 평가하며 통계를 익혔다. 토지 측량시 빈 땅을 찾아내 연간 지대수입 9,000파운드(요즘 가치 약 16억원)를 내는 땅도 얻었다. 이중바닥 선체를 지닌 선박을 발명하고 철공소와 광산을 운영하며 어업과 목재업까지 손을 댄 왕성한 사업의욕도 재력에서 나왔다. 크롬웰 인맥이면서도 왕정복고 후 찰스 2세의 총애를 받으며 하원의원으로 활동하고 기사작위를 받은 데도 돈의 힘이 작용했다. 재산은 집안까지 명문가로 만들었다. 1782년 영국 총리에 오른 피츠모리스가 그의 증손자다. 페티는 부정하게 쌓은 막대한 부를 남기고 1687년 12월16일 64세로 사망했지만 그의 이름은 경제사에 빛난다. 대표 저술인 ‘정치산술’은 형이상학적ㆍ주관적 판단 대신 숫자와 중량ㆍ척도를 바탕으로 제반 현상을 고찰했다는 점에서 경제학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애덤 스미스마저 혹평했던 마르크스는 페티를 이렇게 치켜세웠다. ‘근대 경제학의 건설자, 가장 천재적이고 독창적인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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