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9부. 성장 이끄는 복지체제로 <3> 벼랑 끝 몰린 실버세대

노인 빈곤율 OECD 3배… 고령자 경험 살린 일자리 만들어야<br>10명 중 6명 취업 원하지만 대부분 단순노무직<br>노후준비 부족에 고용차별까지… 이중고 시달려<br>미국 노인청 같은 정책 총괄 컨트롤타워도 필요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을 찾은 노인들이 공원 매점에 붙은 노인 일자리 안내문을 보고 있다. 최근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인구가 크게 늘고 있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 빈곤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서울경제DB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사는 서민용(65ㆍ가명)씨는 얼마 전부터 지하철 택배 일을 시작했다. 택배 주문이 들어오면 지하철을 이용해 물건을 주문자에게 배달하는 일이다. 그는 "65세 이상 노인은 지하철이 공짜라서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노인들도 경쟁력이 있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보수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그의 얼굴은 이내 어두워졌다. "기껏해야 한달에 10만~20만원 정도야.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지."

지금은 그야말로 초저임금 근로자이지만 그도 한때는 잘 나가는 전문직 종사자였다. 대기업 건설회사에 30년간 근무하며 중장비 관리ㆍ운영 업무를 했다. 중국ㆍ리비아ㆍ가나 등 해외 플랜트 공사현장에서도 근무했었다. 외국인을 다루는 업무를 많이 하다 보니 영어와 중국어로도 웬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경험 때문에 은퇴했을 때도 웬만한 곳에 재취업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라는 족쇄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비슷한 업무를 할 수 있는 중소기업에 취업하려고 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였고 그나마 취업한 곳에서도 크고 작은 차별 때문에 오래 일하기 힘들었다. 아예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기로 하고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따 자치구 시설관리공단 등에 지원했으나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다. 결국 그에게 남은 일자리는 지하철 택배와 같은 열악한 직종뿐이었다.

서씨는 "요새 환갑은 예전 40세라고 할 만큼 정정하지만 기업에서는 노인을 여전히 쓸모없는 인력으로 본다"며 "우리 노인 세대는 자식들 키우느라 노후준비도 제대로 못했는데 일마저 못하니 앞으로 살아갈 날이 암담하다"고 말했다.

서씨의 사례는 일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우리나라 노인들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대수명이 크게 늘어나면서 은퇴 후에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삶의 보람을 느끼기 위해 일을 계속하려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55~79세 고령층 인구의 10명 중 6명(59%)은 취업을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은 좀처럼 노인들에게 취업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60세 이상 연령층의 실업률은 1.2%에서 2010년 2.8%로 급등했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2.5%)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그나마 일자리의 질도 매우 열악한 형편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65~79세 취업자 184만명 가운데 단순노무 종사자는 63만3,000명으로 34.4%에 이르렀다. 2005년(27.3%)보다도 7.1%포인트나 늘어난 수치다.

정부는 2005년부터 저소득층 노인에게 일자리를 직접 제공하고 있지만 쓰레기 줍기, 보도블럭 정비, 주차계도 같은 단순업무에 몰려 있다. 이렇다 보니 노인 일자리로 받는 보수도 20만~30만원에 불과하다. 2005년 이후 일자리 수는 23만개까지 늘었지만 근로조건은 제자리걸음인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3.5%)의 무려 3배가 넘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 노인세대의 노후준비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자식교육에 투자하느라 정작 자신의 노후를 챙길 여유가 없었던데다 국가 차원의 사회안전망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노후준비가 열악한데다 취업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 계속되면 노인빈곤은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노인취업 활성화가 필수인 이유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일차적으로는 저소득층 노인에 대한 집중적인 복지 지원이 필요하지만 복지만으로 현재의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노인 일자리 활성화가 뒤따라야 한다"며 "특히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사는 할머니 가구는 빈곤수준이 심각한 만큼 간단한 교육훈련을 해주고 일자리를 주는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단순히 노인 일자리 숫자만 늘릴 게 아니라 노인들의 장점과 경험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어르신들이 직접 제안하는 아이디어를 들어보자.

"농촌은 일손이 모자라 난리인데 여기에 노인인력을 적극 연계시키자. 일손이 필요한 농촌에 수용시설을 만들어 노인들이 1주일에 3~4일 농촌에 머무르며 일을 하면 어떨까. 노인인력 활용도도 높이고 농촌 일자리 부족도 해결하는 윈윈(win-win) 방안이다."-홍윤표(66)씨

"최근 사회복지사가 급격히 늘어나는 복지업무를 감당하지 못해 자살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데 노인인력을 사회복지사로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 노인은 복지의 직접적인 대상자인 만큼 복지 수요자의 욕구를 젊은 사람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한다. 노인들이야말로 복지 관련 상담을 잘할 수 있다는 얘기다."-노봉설(79)씨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총장은 "숫자 늘리기에만 치우친 지금의 노인 일자리 정책으로는 노인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며 "노인 일자리의 내실을 다지는 것과 함께 민간기업들이 노인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도록 다양한 홍보ㆍ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노인 일자리ㆍ복지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지금은 각 부처에서 노인정책을 제각기 시행하다 보니 정보공유도 잘 안 되고 효율성 있게 추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직업능력개발 프로그램의 경우만 봐도 고용노동부의 내일배움카드제도ㆍ고령자뉴스타트프로그램, 노사발전재단의 전직지원서비스, 산업인력공단의 국가기간ㆍ전략산업직종훈련 등으로 담당기관별로 세분화돼 서비스 이용자로서는 어떤 것이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인지 쉽게 알기 힘들다.

김한곤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ㆍ고령사회위원회가 있지만 위원회 정도로는 정책을 총괄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에 역부족"이라며 "미국의 노인청이나 일본의 후생노동청처럼 노인정책을 체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