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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OPEC, '정치적 증산카드' 선택
입력2005-09-21 10:33:56
수정
2005.09.21 10:33:56
"원유난 아닌 정유난" 부각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 소비권의 증산 압력에 최대한 생색을 내는 정치적 제스처를 취했다.
OPEC 석유장관들은 20일 빈에서 이틀간의 회동을 끝내면서 하루 200만배럴인 증산 여력을 내달부터 연말까지 가동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4.4분기에 공식 산유쿼터인 하루 2천800만배럴은 유지키로 했다. 이라크 생산분 200만배럴은 공식 쿼터에서 빠져있다.
언뜻 보면 OPEC가 압력에 굴복해 증산키로 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뉘앙스가 아님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OPEC가 4.4분기 산유쿼터를 고수했다"고 기사를 뽑았으며 BBC도 "OPEC가 정치적 선택을 했다"고 제목을 달았다. OPEC의 `속셈'을 주목한 것이다.
석유업계 전문가들은 OPEC가 이번 결정을 통해 지금의 고유가가 `원유난이 아닌정유난'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분석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리 알-나이미 석유장관의 발언이 주목된다. 그는 석유장관회담이 끝난 후 기자들을 만나 "원유 공급이 달릴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것"이라면서 따라서 "소비자들이 원치 않을 경우 (증산 여력을 풀가동해) 시장에 내놓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OPEC 회원국들이 (증산 여부를) 자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월가 석유 전문가들도 OPEC가 고유가의 출발점이 아니라는 OPEC측 주장에 동조했다.
바클레이즈 캐피털의 에너지산업분석 책임자 폴 호르스넬은 BBC에 "OPEC가 문제의 출발점이 아니다"라면서 "그동안 정유 부문에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OPEC가 원유를 추가 공급해도 고유황 저급유가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에 정유난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알-나이미 장관은 증산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원유 수요가 더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대답해 OPEC의 정치적 제스처성격을 거듭 분명히했다.
석유 소비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클로드 망딜 의장도 OPEC의 추가공급 여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OPEC가 200만배럴 추가생산 여력이 있다고 밝힌데 대해 "기껏해야 하루 100만-150만배럴 정도일 것"이라면서 그나마도 저급유이기 때문에 정유에 어려움이 많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OPEC의 증산 약속이 새삼스런 것이 아니라는 점도 상기시켰다.
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경우 현재 하루 960만배럴을 생산해 공식 쿼터보다 50만배럴 많은 상태라는 것이다. 또 사우디가 지난 18개월간 쿼터초과 생산을 계속해온 점도 상기시켰다. 이와 관련해 알-나이미 장관은 사우디가 내년봄까지 산유량을 하루 1천130만배럴까지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우디 외에 당장 추가생산 여력이 있는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연합, 그리고 나이지리아를 합쳐서 하루 50만배럴 정도를 더 뽑아낼 수 있는 상태라고 뉴욕 타임스는 20일 분석했다.
따라서 OPEC의 증산 약속이 이행된다고 해도 휘발유를 포함한 정유제품 가격은당분간 높게 유지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BBC는 분석했다.
워싱턴 소재 페트롤렘 파이낸스 코프 관계자는 로이터에 "OPEC의 이번 결정이 `우리 잘못이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하는 성격이 짙다"면서 "회원국의 개별적인 증산 재량권도 높이는 이중 효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가 당분간 떨어지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갈수록 유력해지고 있다.
메릴 린치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정유난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내년중 유가가 배럴당 평균 65.5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캐나다 로열 뱅크 오브 커머스 관계자는 심지어 평균 84달러선을 내다보기도 했다.
사우디의 사우드 알-파이잘 외무장관은 20일 뉴욕에서 연설하면서 "배럴당 35-40달러가 바람직한 유가라고 본다"면서 그러나 "당분간 실현되기는 힘들 것"이라고말꼬리를 흐렸다.
(서울=연합뉴스) 선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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