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선진화법은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안건 처리를 막기 위해 2012년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법안에 대해 본회의 상정을 과반수보다 엄격한 재적의원 5분의3 동의로 하도록 했으며 3분의 1 이상이 요구할 경우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허용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했다. 하지만 도입 당시부터 다수결의 헌법원리에 어긋나고 우리 정치현실과도 동떨어진다는 비판과 함께 재개정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선진화법은 야당에 정부·여당 '발목잡기'를 제한 없이 허용한 것이 문제였다. 실제 국회는 5월2일 한차례 본회의를 열어 법안을 처리한 후 100여일 이상 단 한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 역시 선진화법 때문이다. 본회의를 한번도 열지 못하고 끝난 7월 임시국회까지 93건의 법안이 본회의에, 법제사법위원회에는 43건이 계류돼 있다. 여기에 각 상임위에 묶여 있는 법안까지 포함해 200여건의 민생·경제법안이 국회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다. 이 모두가 정부의 경제활성화 방안 시행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일각에서 세월호법과 민생법안의 분리처리론이 제기되는 것은 야당조차 식물국회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선진화법 개정에는 국회의원 3분의2의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의 여야 정치지형을 고려하면 야당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안 되면 헌법재판소로 찾아가는 방법도 있다. 그러잖아도 세월호법을 계기로 정치권의 문제해결 능력에 의문을 품는 국민 여론이 비등하는 상황이다. 여야 정치권은 교착정국을 뚫고 식물상태의 국회를 되살리기 위한 실마리를 국회 선진화법 개정에서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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