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주위를 잘 웃겼던 나는 고교 시절 제법 알려진 코미디언이었다(당시는 개그맨이라는 말이 없었다). 교내 행사나 모임에 사회자로 불려다니고는 했는데 늘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우스갯소리를 수집했고 특별한 날은 내가 직접 만들기도 했다. 개그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기술인 연기가 중요하다.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어떤 분은 행사용으로 늘 유머를 준비했는데 언제나 주변을 썰렁하게 했다. 입바른 소리를 잘하던 내가 한 번은 "우리 대표님은 어쩌면 저렇게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도 재미없게 하는 탁월한 재주를 타고나셨는지 모르겠다"며 주변을 웃겼는데 정작 그분은 몹시 서운한 표정이셨다.
개그 연기의 핵심은 '예측 불허'이다. 다음 대사가 뻔히 예상되면 그야말로 허무 개그다.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대사가 튀어나올 때 웃음보가 터진다. 물론 나도 늘 성공하지 못했다. 나름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펼쳤는데 반응이 시원찮으면 정말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고교 시절 '윙스'라는 영어 동아리가 있었는데 중간중간 사회를 보게 됐다. 사전에 적지 않은 개런티도 받은 터라 창작 개그 위주로 콘티를 짰다. 너덧 차례 순서가 있었으나 처음부터 낭패를 봤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개그가 전혀 먹히지 않았다. 간신히 시간을 때우고 무대 뒤로 돌아온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두 번째 순서에 심호흡을 하고 무대로 나섰는데 '야 이번엔 좀 웃어주자!'는 관객들의 야유성 속삭임이 천둥소리처럼 들려왔다. 순간 '에라 모르겠다'며 창작물을 포기하고 시중 잡담을 끄집어냈다. 그랬더니 웬걸, 객석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나는 '진작 이럴걸' 하며 신이 나게 유치찬란한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이를테면 당시 유행하던 라디오 음악 리퀘스트 방송 형식을 빌려 한 처녀와 DJ의 대화를 소개했다. '아, 어디 사는 누구시죠?''네 저 미아리 순자에요''아, 네, 무슨 일을 하시나요?''네, 저 싸고 있어요''뭐라고요, 싸요? 뭘요?' '네, 사탕 싸고 있어요''아, 네에, 그럼 무슨 곡을 신청하시겠습니까?''네, 프라우드 미아리요''네? 프라우드 미아리라뇨?''아, 프라우드 메리요?''네, 씨씨아르의 프라우드 메리 보내드리겠습니다' 뭐 이런 거였다. 관객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대를 내려왔다. 그런데 윙스 선배로 서울대 미대생이던 다음 출연자가 한 마디를 했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를 하더라도 주의를 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모멸감을 주는 농담은 삼가야 한다. 대단히 반인격적이고 반인륜적인 공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어 '친구'와 '아침 이슬' 등 자작곡을 기타를 치며 불렀던 그는 나중에 사회성 짙은 노래로 유명해진, 바로 김민기였다.
나는 무대 뒤에서 그의 뼈아픈 질책을 들으며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무심코 한 말이 사회적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부끄러웠다. 이 기억은 나의 삶에 매우 깊은 영향을 미쳐 예순을 앞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후로 나는 별생각 없이 농담을 하다가도 문득 '지금 혹시 김민기 선배가 옆에 있다면 뭐라 하실까'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버릇이 생겼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