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격이 2009년 3월부터 4년 5개월째 오르는 가운데 정부가 지난달 말 내놓은 8ㆍ28 전월세 대책의 주요 골자는 빚내서 집 사라는 것이다. 넘치는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돌려보겠다는 고육지책이다. 주택시장도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에 의해 움직인다. 시장원리를 거스르는 주택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볼지 여전히 의문이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어섰고 저출산ㆍ고령화로 주택수요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1,000조원의 가계 빚더미로 서민들은 원리금 상환과 사교육비ㆍ월세 대느라 집을 살 여력이 없다. 전세금이 매매가의 60%가 넘으면 집을 산다는 속설도 깨진 지 오래다. 저성장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집값은 2008년부터 6년째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집을 사면 손해볼 것이 뻔한데 정부가 빚내 집 살 것을 권한다고 어느 누가 집을 사겠는가.
당장 가을 전세난에 세입자 허덕대
정부는 주택을 담보로 국민주택기금에서 대출을 해주고 집값의 등락에 따라 손익을 나누는 '손익공유형 모기지'를 도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집값 추세를 감안할 때 하우스푸어를 양산하고 공적자금인 국민주택기금까지 낭비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곳에 쓸 돈이 있다면 서민 주거 안정에 쓰는 것이 옳다.
시장을 거스르는 단기적 미봉책으로 실타래같이 얽힌 전세난을 해결할 수 없다. 당장 올 가을 전세시장이 걱정이고 전세난의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는 작금의 전세난을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고 매매수요 확충이 아니라 임대주택 확대로 방향키를 돌려야 한다. 분양주택은 민간 자율에 맡기고 정부와 지자체는 소형위주의 임대주택 공급에 전념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민주택 개념도 소유에서 주거로 바꿔나가야 할 때다.
정부는 민간임대주택 활성화에 전월세난 해결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민간임대사업자에 대한 체계적 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금융과 세제상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민간임대주택을 활성화하면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주택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고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들어가는 공적자금을 최소화할 수 있다.
주거빈곤층 돕는 관련법 우선 처리를
지금 가장 고통 받고 있는 세입자는 전세 얻을 돈이 없어 치솟는 월세와 맞닥뜨리고 있는 주거 빈곤층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이번 대책에서 소외됐다. 주거 빈곤층에게는 당장 '주택바우처'로 주거비 부담을 덜어줘야 하는데 내년 10월 이후로 미뤄졌다. 월세소득공제도 낼 소득세가 없는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주거 빈곤층의 주거 안정을 돕기 위해 골조ㆍ전기배선ㆍ온돌 등 집의 80%를 공장에서 찍어내 부지에서는 조립만 하는 '모듈러 임대주택'을 저렴하게 대량 공급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제 부동산정책 불확실성이 주택거래 침체와 맞물려 전세난을 부추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부는 취득세 감면이 종료돼 거래절벽이 예상되는데도 아무런 사전 대책 없이 방치했다. 이에 따라 취득세 감면시한이 끝난 지난 7월 이후 주택거래가 급감했고 주택시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국회는 다주택자 양도세중과 폐지 법안을 수년째 발목잡고 있다. 앞으로 국회는 주택거래 정상화와 민생 해결 차원에서 전월세 대책 관련 법안을 최우선 처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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