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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볼거리 가려버린 '민숭민숭' 캐릭터

● 새영화-간신

오프닝 시퀀스·수상연회 장면

압도적 영상미 보였지만 매력 잃은 캐릭터는 아쉬움



민규동 감독의 신작 '간신(사진)'은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영화다. 화려한 볼거리를 즐기는 관객들에게는 최상의 선택이지만 스토리와 캐릭터를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일단의 아쉬움을 남길 듯하다.

영화는 재물을 마구 써버린다는 뜻의 흥청망청(興淸亡淸)이라는 말이 유래된 역사 속 사건 '채홍(採紅)'을 소재로 한다. 조선의 10대 왕이자 최악의 폭군으로 기록된 연산군이 조선 팔도의 미녀 1만 명을 강제 징집해 왕의 시중을 들도록 한 일이다. 왕의 기녀들은 태평한 운수를 만났다는 뜻의 '운평(運平)'이라 이름 지어졌고, 이 중 우수한 성적을 거둔 운평들은 사특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의 '흥청(興靑)'이라 칭해졌다. 이 흥청들과 밤낮으로 놀아난 연산군이 결국 중종반정으로 왕좌에서 쫓겨나 목숨까지 잃게 된 것을 두고 백성들이 '흥청'이 '망청(亡靑)'이 됐다 하여 '흥청망청'이란 말이 생긴 것이다.

왕의 주색잡기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는 영상미와 미장센(시각적 연출)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최근 1~2년 내 개봉한 사극 영화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연산군(김강우 분)의 어미 폐비 윤씨의 죽음을 둘러싼 피바람 나는 복수극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요약해 담은 오프닝 시퀀스는 특히 감각적이다. 슬로우모션 등의 효과로 리듬을 살린 영상과 배경으로 흐르는 판소리 내레이션은 관객들의 눈과 귀를 단박에 사로잡는다.



사극 영화 사상 최초로 시도된 수상연회 장면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강렬한 붉은 의상을 입고 군무를 선보인 기녀 설중매(이유영)와 대비되는 흑백 속에서 칼춤을 선보이는 단희(임지연)의 모습은 특히 아름답다. 스텝들은 물론 2개월 전부터 소리와 무용을 연습했다는 배우들의 노고가 결실을 맺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야기와 캐릭터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다. 미쳐버린 왕으로 회고되는 폭군 연산군, 왕 위의 왕을 노리는 간신 임숭재(주지훈 분), 베일에 싸인 여인 단희, 재물과 권력을 탐하는 기녀 설중매, 희대의 요부 장녹수(차지연 분)라는 이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평면적인 묘사 탓에 제 매력을 잃어버렸다. 죽은 어미를 그리워하며 누구도 믿지 못하는 왕은 그저 광기 어린 인물로만 그려졌고 왕마저 쥐락펴락하려 했다는 간신 임숭재는 그 야망에 어울리는 행동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여인들 또한 향기는 나지 않는, 그저 화려하기만 한 꽃처럼 묘사돼 아쉬움을 남겼으며 인물들의 감정 흐름 또한 공감하기 어려웠다. 청소년 관람 불가,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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