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조부모가 손주를 키우는 ‘황혼 육아’가 증가하고 있다. 2012년 보건복지부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에 다니는 기혼 여성의 50.9%가 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황혼 육아가 사회 트렌드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국립국어원은 황혼 육아로 육체적, 정신적 증세를 얻은 상태를 뜻하는 ‘손주병’을 신조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손주병은 손목, 어깨, 허리, 무릎 등 퇴행성질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화로 인해 관절이나 디스크 등이 이미 쇠약해진 상태에서 하루 9시간 이상의 가사 및 육아와 관련된 중노동에 시달리게 되면 노화가 더 촉진되고 때론 심각한 손상을 입기 쉽다. 그 중 하나가 손목터널증후군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2년 손목터널증후군 환자의 79%가 여성이며, 50~60대가 60%(7만6750명)를 차지했다.
손목터널증후군은 갑자기 무리하게 손목을 사용하는 상황이 일상화될 경우 손목터널(손목 앞 쪽 피부조직 밑에 뼈와 인대들로 형성된 작은 통로)을 덮고 있는 인대가 두꺼워지면서 신경을 압박해 통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아이를 안고 분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가는 과정에서 손목에 무리가 가서 주로 발생한다. 손목 통증과 함께 손바닥과 손가락 끝이 전기가 오듯 찌릿한 증상이 나타나며, 심한 경우 운동장애를 동반하기도 한다.
초기에는 손목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더운 물에 20~30분 찜질하면 증세가 좋아진다. 통증이 지속되거나 심한 경우에는 약물치료나 주사치료를 하면 증세가 호전된다. 하지만 치료를 게을리하면 신경조직이 손상돼 병이 만성화하거나 손가락과 손목이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아 수술적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허리가 좋지 않은 노년층에게 황혼 육아는 허리디스크(요추간판수핵탈출증) 등 허리질환을 불러올 수 있다. 손주를 안을 때 보통 아이 체중의 10~15배에 달하는 하중이 허리에 가해져 퇴행성 척추통증 및 척추관협착증의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또 척추와 척추 사이의 수핵이 탈출하는 허리디스크의 위험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황혼육아를 담당하는 60~70대 노년층에서 무릎 관절 질환도 흔한 편이다. 아이를 안고 업는 과정에서 아이의 무게만큼의 하중이 무릎에 전달된다. 무릎 안의 연골파열, 인대손상의 위험성이 증가해 퇴행성 관절염을 촉진할 수 있다. 심한 경우 수술적 치료가 요구돼 미리 조심해야 한다.
이밖에 오십견(유착성 관절낭염)도 쉽게 올 수 있다. 오십견은 특별한 외상 없이 노화로 인한 퇴행성 변화로 자주 발생하는데, 아이를 한쪽으로 계속 안게 되면 어깨 관절이 유착된다. 증상이 가벼울 때에는 소염제 주사나 뜨거운 찜질, 전기자극 등 물리치료가 효과적이다.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관절내시경수술로 치료하기도 한다.
군포병원 김성찬 병원장은 “60대 이상의 노년층은 척추, 어깨, 무릎 등이 성치 않은 경우가 많은데도 자식들을 염려해 체력적으로 큰 부담을 주는 황혼 육아를 돕는 경우가 많다”며 “자식들에게 심려를 주기 싫어 통증을 참기만 하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지 말고 조속히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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