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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 칼럼/3월 27일] 정동영, 백의종군할 때

중국 고사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다. 작은 것에 눈이 어두워 큰 것을 잃는다는 뜻이다. 바둑에서는 좁은 집짓기에 집착하다 보면 큰 집을 놓친다는 가르침이다.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눈앞의 적은 이익에 팔려 평생 닦아온 인격과 명예ㆍ목돈 등 값진 것을 잃을 때가 있다. 정치인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금배지를 뗀 경우가 있다. 명예를 중시하는 공직자가 미끼성 뇌물 낚시에 걸려 불명예 퇴진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조직 전체 이익을 우선해야 할 금융인이나 회사원이 사리사욕 차원에서 조직의 돈을 빼돌리다 잡혀 패가망신한 사례도 적지 않다. 욕심이 과하면 위기에 직면
물론 각자의 그릇 크기와 가치관에 따라 무엇이 작은 것이며 무엇이 큰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선거로 심판 받는 정치인의 진로 결정에는 시운과 명분, 국민들의 표심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을 거역하고 자기 욕심대로 진로를 선택하면 험난한 위기에 직면한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야당인 민주당이 정동영(DY) 전 통일부장관의 4ㆍ29 재보선 전북 전주 덕진 공천문제로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DY가 미국에서 재보선 출마를 선언한 뒤 고국에 돌아와 당론과 관계없이 전주 출마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4일 밤 서울 마포의 한 한정식집에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만나 출마 문제를 논의했으나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두 사람은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면 풀지 못할 문제가 어디 있겠느냐는 입장으로 대화에 나섰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정 대표는 회동 뒤 “오는 4월 재보선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교환했다”며 “(공천에 부정적인) 최고위원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선당(先黨)의 자세로 협력방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DY는 “전주 덕진 출마와 함께 선대위원장을 맡아 재보선을 책임지고 지원하겠다고 정세균 대표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중대한 당의 문제는 당원의 입장을 물어보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의 공천 배제 때 무소속 출마 가능성에 대해 “너무 이른 이야기”라고 즉답을 회피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울 동교동 사저를 찾은 DY에게 “어떤 경우에도 당이 깨지거나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실망한다”고 말했다. DY는 중진ㆍ원로그룹 등 다양한 인사들을 만나 의견을 경청한 뒤 자신의 입장을 결정할 예정이다. 그는 MBC기자로 활동하다 15대 때 정계에 들어와 당 대변인에 이어 2004년과 2006년에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냈다. 그는 대중연설과 정치감각이 뛰어난 정치인이다. 2007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라이벌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누르고 대권에 도전했으나 이명박(MB) 한나라당 후보에게 대패했다. 지난해 총선 때는 서울동작을 선거구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후보에게 쓴잔을 마셨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지도자의 꿈을 키우던 중 9개월 만에 돌아와 국회에 입성한 뒤 당권과 대권 재기를 모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 시운이 아닌 것 같다. 이번 선거는 경제불황 국면으로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당초 예상을 깨고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마저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김빠진 선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주 출마 명분도 약하다. 그는 지난해 총선 때 서울 지역구에서 출마할 당시 “동작에서 뼈를 묻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다시 1년 만에 전주로 돌아가겠다는 논리를 국민들이 납득할지 자문해야 한다. 다만 동작구민의 양해아래 민주당 지도부와 당원들이 진심으로 그의 출마를 권유할 경우는 예외다. 명분 약할땐 은인자중이 필요
때가 아니고 명분이 약할 때는 기다리면서 지도자로서 역량을 더욱 쌓는 게 보약이 아닐까. 이제 모든 결정을 당론에 맡기고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행동할 때 좋은 찬스가 생길 것이다. DY는 선수들과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돌아온 김인식 야구 감독의 인내와 믿음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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