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둥성 위생계획생육위원회는 지난달 31일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한국인 남성 K(44)씨와 광둥성 후이저우에서 접촉한 47명을 격리했다고 밝혔다. 홍콩 보건당국도 K씨와 같은 비행기를 탔던 18명을 휴양촌에 격리해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본토와 홍콩에서 격리조치된 65명 가운데 8명은 한국인이다. 홍콩 당국은 격리 대상자 가운데 11명이 홍콩에서 한국이나 중국으로 이미 이동한 것을 확인하고 양국과 세계보건기구(WHO)에 통지했다. K씨가 홍콩에서 후이저우로 이동할 때 탔던 버스의 승객과 기사 26명도 추적조사하고 있다.
광둥성 후이저우 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인 K씨는 고열 증상을 보이고 있지만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중국신문망은 이날 전했다. K씨는 앞서 39.5도가 넘는 고열과 폐렴 증세를 보였지만 지난달 30일부터 안정세를 찾았다.
중국과 홍콩 보건당국은 메르스 유입에 초비상이다. 사스가 창궐한 2003년 1·4분기 당시 성장률이 전 분기 10.5%에서 7.9%로 급락했던 경험이 있는 중국 정부나 당시 관광객 유입 제한으로 피해를 본 홍콩 입장에서는 메르스를 조기진화하지 못할 경우 가뜩이나 둔화하는 경제에 직격탄을 맞게 된다는 우려가 크다.
중국과 홍콩 보건당국은 특히 K씨로 인한 3차 감염 발생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때 K씨와 접촉한 중국인 50대 여성이 메르스 의심을 받았지만 진단 결과 음성판정을 받아 한숨을 돌리기도 했다. 두바이를 방문한 홍콩 여성 2명도 감염 의심증세를 보였지만 검사 결과 음성판정을 받았다. 가오융원 홍콩 식품위생국장은 "잠복기간이 2~10일인 만큼 당분간 지켜봐야 한다"며 "K씨가 추가로 접촉한 사람이 있는지 중국 보건당국과 공조해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 공포는 중국·홍콩뿐 아니라 대만과 마카오로도 확산되고 있다. 중국대만망에 따르면 대만 타이베이시에 거주하는 남성이 메르스 유사증세를 보여 혈액검사를 진행 중이다. 중국·홍콩과 인접한 마카오는 한국에서 출발한 입국자에 대해 개별 체온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마카오신문은 이 같은 조치가 한국 주변국들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메르스 확산에 대한 공포가 커지면서 중국에서는 메르스가 유입된 한국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 언론과 네티즌들은 한국 보건당국에 대해 맹비난을 하고 있으며 메르스 환자와의 접촉 사실을 밝히지 않은 K씨에 대한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스 사태로 명성을 얻은 허바이량 홍콩대 교수는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건강상태를 허위신고하는 사람은 기소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메르스 사태가 자칫 반한감정을 자극해 유커(중국 관광객)들의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격리 대상자로 선정된 한국인 여성 관광객 2명이 격리를 거부하고 홍콩항 인근을 다녔다는 소식이 중국 언론에 크게 보도되며 중국 네티즌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들은 홍콩 주재 총영사관의 설득으로 격리시설로 이동했지만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인들은 무책임하다" "한국인들을 감옥에 가두라" 등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이 퍼지면서 중국인들의 반한감정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일부 인터넷 매체는 K씨 외에도 다수의 메르스 환자를 접촉한 한국인이 중국에 입국했다는 인터넷상의 루머를 여과 없이 보도하는가 하면 한국 정부가 메르스 환자 등을 은폐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중국중앙(CC)TV 등 일부 매체들은 K씨가 소속회사인 LG의 후이저우 제품 교류회에 참석했다고 보도하며 LG전자 홍콩법인이나 공장 등에 접촉자가 있을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K씨는 LG 계열사인 LG이노텍의 협력회사 직원으로 확인됐으며 교류회에 LG전자 직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LG전자 홍콩법인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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