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1월24일 바세나르. 네덜란드의 비벌리힐스라고 불릴 만큼 부촌인 이곳의 경제인연합회장 별장에 노조 대표가 초대됐다. 마라톤 협상 끝에 양측은 ▦임금 삭감과 ▦일자리 분배를 통한 고용유지 및 확대를 골자로 하는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greement)에 합의했다. 노조는 왜 임금의 물가연동제를 포기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해야 연명이 가능했던 기업들은 어떤 이유에서 고용유지를 확언했을까. 위기의식 때문이다. 협약 당시 실업률은 12%. 청년실업률은 30%를 웃돌았다. 경제가 파탄 위기를 맞게 된 이유는 두 가지. 북해 유전과 과도한 복지지출 탓이다. 1957년 대규모 천연가스가 발견돼 굴덴화 가치가 상승, 임금과 물가가 오르며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다. 사회보장 지출은 천연가스 판매분 이상으로 늘어나고 오일쇼크 이후에는 재정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바세나르 협약 이후 네덜란드는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안정 속에 실업률 저하와 재정안정ㆍ고성장을 이뤘다. 몇 차례 위기가 찾아왔지만 새로운 타협으로 난관을 뛰어넘었다. 바세나르 협약 당시 노조 대표가 총리에 취임해 위기극복의 선두에 선 적도 있다. 물론 반론도 적지않다. 협약은 단순한 권고사항일 뿐이며 ‘폴더(Polderㆍ간척지) 모델’ 자체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분석도 있다. 분명한 점은 ‘네덜란드 병’이라는 용어가 사라진 것은 협약 이후이며 수많은 나라들이 폴더 모델을 배우려고 했다는 점이다. 한국도 한때 도입을 시도한 적이 있다. 과연 가능할까. 한 가지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암스테르담 시장과 내무장관까지 역임한 정치인이 재임 16년 동안 400만원을 유용했다는 점이 최악의 부패 스캔들로 지목 받는 네덜란드처럼 맑아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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