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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4월 1일] '신뢰'의 위기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미국에서 가장 신랄하고도 설득력 있는 경제비판가로 명성을 누리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지난 30일자 뉴욕타임스 기고글을 통해 한탄했다. “요즘에는 미국이 무슨 말을 해도, 심지어는 옳은 말을 해도 유럽 관료들이 시큰둥하다.” 미국 금융권에서 발생한 위기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미국에 대한 세계인들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어지간한 전문가들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복잡한 금융상품이 거래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이는 금융기업에 대한, 또 정부 규제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이 같은 믿음이 사그라지자 세계경제는 손바닥만한 얼음장 위에 선 북극곰 꼴이 됐다. 크루그먼은 리더십이 절실한 경제위기 국면에서 정작 미국은 예전의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다행히 미국은 신뢰를 축적해 시장을 키우는 법을 잘 알고 있다. 19세기 월스트리트는 공매도 등을 이용한 각종 ‘작전’이 난무하는 신뢰의 황무지였다. 이랬던 월스트리트에서 당시만 해도 미국보다 훨씬 더 금융 선진국이었던 영국인들에게까지 ‘투자할 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건 결국 JP모건 창립자인 존 피어폰트 모건(1837~1913) 같은 인물들이었다. 그는 기업의 실제가치를 끌어올려 주가를 상승시켰다. 지금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같은 중앙은행이 없던 1907년 금융위기 당시 경쟁자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대신 정부의 구제금융까지 지휘해가며 위기복구에 기여했다. 모건은 신뢰야말로 내가 살고 너도 사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를 겪어온 미국과 그 금융기업들이라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은 신뢰를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4월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릴 주요20개국(G20) 회의를 비롯해 세계경제의 방향에 대한 논의는 신뢰의 원칙을 이전보다 더 전면에 내세우는 경제 시스템 구축으로 귀결될 것이다. 눈앞의 경제회복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도 이 같은 논의과정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신뢰의 위기’는 언제고 우리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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