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간 정쟁심화로 주요 경제활성화법이 국회에 장기 계류되고 있는 데 이어 국감 이후 예산안 처리마저 불투명해지는 등 정치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여야는 오는 11월18일부터 상임위원회별로 예산안을 논의할 방침이지만 법정기일인 12월2일은 말할 것도 없고 연말까지도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 공방에 파묻혀 예산안을 처리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야가 예산안에 합의하지 못해 지난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준예산을 집행하게 되면 미국의 셧다운(정부 폐쇄) 정도는 아니지만 경제에 큰 그늘을 드리우는 악재임에 틀림없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제활성화를 위한 주요 법안도 해당 상임위에서는 11월 초부터 논의될 예정이지만 이 역시 여야가 '경제활성화가 먼저냐, 경제민주화를 병행해야 하느냐'의 현격한 시각차로 인해 연말까지 예산안ㆍ세법개정안과 함께 처리가 미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주요 법안이 국회에만 가면 번번이 스톱되는 데 따른 시장의 불확실성이 지속될 우려가 높다는 말이다.
현재 여야가 합의한 정기국회 일정을 보면 국정감사는 국정원과 대통령비서실ㆍ경찰청 등을 제외하고 이번주까지 대부분의 상임위원회에서 마무리된다. 다음주부터 상임위별로 2012 회계연도 결산 심의에 돌입해 11월8일 본회의에서 의결된다. 물론 국정감사 시작 전에 결산을 마무리한 상임위의 경우 국토교통위원회가 11월5~6일에 법안소위를 열어 취득세 인하 관련법 등을 논의하는 등 조기에 주요 법안 심의에 착수하지만 격랑 속에 파묻힌 정국을 고려할 때 결실을 맺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11일에는 2014년도 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이 예정돼 있으나 현재 정국 분위기를 볼 때 박근혜 대통령 대신 정홍원 총리가 대독할 가능성이 높다.
18일까지는 정치, 경제, 교육ㆍ사회ㆍ문화, 외교ㆍ통일ㆍ안보 등 대정부 질문이 진행되는데 이 또한 여야 간 힘겨루기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9월2일 정기국회 개회식만 가진 뒤 9월30일부터 가까스로 정상화된 정기국회이지만 여야의 극한 정쟁으로 언제든지 파행의 불씨를 안고 있는 것이다.
국내 재계 총수 중 한 사람은 최근 기자와 만나 "정부가 비자금을 조성한 대기업들에 대해 검찰 수사를 확대하고 지하자금 양성화를 위해 세무조사를 늘리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글로벌 경제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국감에 기업인들을 대거 불러 망신이나 주고 주요 법안은 통과시키지도 않고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어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정 총리가 28일 대국민담화에서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약속하며 민생입법 통과를 여야에 부탁한 것도 최근 세수부족의 심화 속에서 경제를 다시 한번 추슬러야 한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이날 야당에 외교ㆍ국방ㆍ재정ㆍ복지 등 민생에 치중하자고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민주당 등 야당은 국감 이후 더 강력한 투쟁을 예고하는 등 댓글 정국의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와 만나 "현 정권은 공작은 프로, 민생은 아마추어"라고 규정하며 대통령의 사과와 남재준 국정원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조영곤 중앙지검장 등의 문책을 거듭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여야의 신뢰회복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입법조사처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는 정치외면과 소통부재, 정부는 신뢰상실과 설득능력 부족, 여당은 야당 공격과 정쟁 부추기기, 야당은 정쟁매몰과 민생외면 등의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집권세력이 국회선진화법을 감안해 이제는 포용력을 발휘할 때라고 지적했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국회에 많은 경제ㆍ민생법안이 잠자고 있고 예산안 협의가 목전에 와 있는데 미국처럼 셧다운 사태를 맞지 않기 위해서는 여야가 정쟁할 때는 하더라도 물밑에서 민생을 챙겨달라"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