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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 털자" 출판·서점가 땡처리 기승

■ '15%만 할인 가능' 도서정가제 21일부터 시행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최고 90% 할인행사 봇물

"구간까지 비싸게 사라니"

독자들만 피해 우려 속 KDI도 "출판시장 치명적"

대한출판문화협회 등 출판·유통업계는 19일 서울 사간동에서 도서정가제 시행을 위한 자율 협약식을 가졌다. 이날 대표들은 도서정가제의 원활한 정착과 감독을 위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산하에 자율도서정가협의회를 신설해 운영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도서정가제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막판 세일을 하고 있는 전자책 세트를 와장창 질렀다. 언제 다 읽나 싶지만 이때 아니면 이 책들 못 살 것 같아서…."

대중적인 과학 강연과 글쓰기로 유명한 정지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을 통해 이 같은 글을 올렸다. 이날 사들인 책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6권 세트)과 은하영웅전설(15권 세트), 대망(36권 세트) 등 70여권. 모두 전자책 서점에서 최고 63%까지 할인 판매하는 책들이다. 19일 기자가 인터넷 서점 YES24에서 전자책을 구매한 결과 공짜로 받은 쿠폰과 상품권으로 6만원 상당의 전자책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재고 털자…막판 할인 판매 기승 =도서정가제 개정안 시행을 하루 앞둔 출판·유통업계는 파격적인 할인 판매에 막판 열을 올렸다. 온·오프라인 서점, 출판사 너나 할 것 없이 최고 90% 도서 할인 행사를 벌이고 있다. 내일인 21일 개정안이 시행되면 통상적인 할인 행사가 금지되는 마당에 재고 부담을 털겠다는 취지다.

이 가운데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이 같은 할인 도서가 대거 진입했다. 최근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만화 '미생'은 40% 할인 판매되면서 최근 한 달 새 100만부에 이어 또 보름이 지나서는 150만부로 판매기록을 갱신했다. 수년 전 출간된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죽음이란 무엇인가'도 반값에 팔리면서 순위권에 재진입했다.

◇내일부터 신·구간, 실용·초등참고서도 15%만 할인=기존 도서정가제하에서는 신간이 19%(직접 10%+간접 9%)까지 할인 가능했고 출간 후 1년 6개월이 지난 구간과 학습참고서·실용서 등은 아예 할인율 제한이 없었다. 일부에서는 세트 도서나 실용서 카테고리 등록 등 편법을 동원해 가격을 낮춰 제도 취지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21일 시행되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에 따르면 모든 도서가 예외 없이 정가 기준 15%(직접할인 10%+간접할인 5%) 넘게 가격을 내릴 수 없다. 과도한 도서 할인 경쟁과 지역 중소서점 줄도산을 막아 양질의 콘텐츠 경쟁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정부는 개정안이 결국 독자에게 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책값 거품이 빠지고 다양한 책이 늘어나면 독자가 수혜자라는 취지다.

◇독자 '우리가 봉이냐'…벌써부터 정가제 후유증=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책 출간 시기나 분야에 상관없이 일괄 적용되는 것에 불만이 많다. 독자 장성하(39)씨는 "새로 나온 책이야 그렇다지만 구간까지 비싸게 사라는 건 이해가 안되죠. 책이 일반 상품과 다르다지만 결국 업계만 배 불리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또 일반인 대상의 여론조사나 공청회 한 번 없이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왜 그 비용을 독자가 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 이중호 미래출판전략연구소 소장은 "정부는 출판사가 자발적으로 책값을 내릴 거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일반인 대상의 공식 여론조사라도 한번 했으면 명분이 생길 텐데 그런 것 없이 출판·유통계 주장만 듣고 시행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비자를 편드는 의견은 오히려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나왔다. 지난 16일 조성익 연구위원이 내놓은 '도서정가제와 도서소비자의 편익' 보고서에서 조 위원은 개정안이 결국 책값을 올리고 도서 수요를 줄일 것이라며 이는 출판시장에도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도서정가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직접 보조 형태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도서정가제 논의에 소비자가 배제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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