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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언제나 외로울 수 밖에 없다. 말 동무 하나 없이 쓸쓸히 밥을 먹고 전시회를 가다 보면 식욕도 떨어지고 작품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리 외톨이로 사는데 익숙해진 1인가구라도 사람 냄새가 그리울 수 밖에 없다. 최근 1인가구를 중심으로 게릴라 식으로 모여 식사 또는 취미생활을 같이 한 후 헤어지는 ‘소셜다이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자는 건 혼자지만 사는 건 함께 하길 원하는 나홀로족만의 독특한 공존방식인 셈. 소셜다이닝에 직접 참여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몇 년 새 서울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잡은 삼청동. 북적거리는 인파를 헤치고 소셜다이닝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시계는 벌써 2시를 가리켰다. 전날 중개사이트를 통해 모임에 참석한다고는 했지만 누군지도 모르고 가진 것이라곤 달랑 주최자(모임지기)휴대폰 전화번호뿐이라 헤매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막상 와 보니 괜한 걱정.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던 모임지기를 보면서 안심이 됐다.
이날 모임의 주제는 국제갤러리에서 ‘줄리언오피 전(展) 보기’. 참석자들이 다 모이고 간단한 인사가 오갔다. “안녕하세요. liz입니다” “저는 sui:p 라고 합니다.” 다들 이름 대신 각자 아이디 뿐이었다. 출신학교나 고향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었다. 개인생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묻지 않기로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듯이 보였다.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1인가구만의 독특한 냄새가 여기서도 물씬 풍겼다.
모두 모이자 모임지기는 “전시회 관람은 각자 하고 나중에 다시 모이자”고 제안했다. ‘관람을 따로 한다고?’ 서로 불편해 할 것은 알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낯선 느낌이었다. ‘아직 나는 진정한 나홀로족이 안됐나 보구나….’
이날 참석자는 3명 밖에 안됐다. 원래 정원이 6명이었으니 딱 절반만 온 셈. 모임지기는 “미리 못 온다는 연락을 받기는 했지만 원래 길게는 1주일 전에 신청하기 때문에 6명 모임이면 3~4명이 나오는 게 보통”이라며 “사람이 한번 걸러지고 진짜 오고 싶은 이들만 오기 때문에 분위기가 더 좋다”고 설명했다. 공방이나 업체에서 하는 모임이야 돈을 내고 하기 때문에 참석률이 높지만 개인이 하는 무료 모임은 제약이 없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가까운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음료와 간단한 빵을 시켰다. 계산은 철저한 더치페이. 생판 모르는 사람끼리 만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전시회에 대해 10여분간 간단한 얘기가 오갔다. 각자 작품에 대한 느낌을 말했고 알고 있던 배경지식도 꺼냈다. 하지만 역시 처음 보는 사이라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누기는 힘들었다.
결국 이야기는 오늘을 있게 한 소셜다이닝으로 넘어갔다. 모임지기를 제외하고 둘 다 처음이라 질문이 많았다. 지난해부터 15번 정도 소셜다이닝을 나왔다는 모임지기는 “30대다 보니 친구들을 만나면 매번 옛날 얘기만 해서 지루했는데 관심사가 같은 사람끼리 모이면 다른 사람이라도 흥미로울 것 같아 나왔다”고 참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또 “주로 싱글,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고 나이도 30대 전후가 주축”이라며 “”모임이 정말 다양하기 때문에 각자 관심사에 따라 선택하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날 참석을 신청한 6명 중 5명이 여성이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후 직장생활에 대한 넋두리 등이 이어졌지만 서로 자세히 묻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는 못하고 자주 끊겼다.
미리 약속했던 2시간이 지나자, 모임지기가 ”인연이 되면 또 보자“는 말과 함께 종료를 선언했다. 그가 떠난 후 liz와 지하철역까지 같이 걸으며 삼청동에 대한 인상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역시 길게 이뤄지지는 못했다. 오히려 침묵의 시간이 더 많았다. 그렇게 어색하게 헤어지고 집에 돌어오니 시계가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프라이버시는 지키면서 가벼운 대화로 공통의 관심사를 만들어 가는 소셜다이닝. 어색함만 견딘다면 혼자 사는 외톨이들에게 여가를 유용하게 보낼 수 있는 수단이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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