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주말 오후. 오랜만에 아내와 아들에게 식사를 만들어 대접하겠다고 거창하게 말했다. 자신 있게 꺼낸 회심의 카드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후 세간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짜파구리'. 기대에 잔뜩 부풀었던 아내와 아들은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한 젓가락 먹고 나더니 말을 바꿨다. "어, 맛있는데요."
짜파구리는 짜장 라면과 면 굵은 매운 라면을 섞어 소비자가 직접 만든 이른바 '짬뽕' 음식이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조리법과 쫄깃한 면발에 스며든 짜장과 매운 맛의 조화는 이제까지의 라면과는 전혀 다른 맛으로 애호가는 물론 일반인의 입맛까지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 덕에 농심은 시장 점유율 69.9%를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다.
짜파구리 열풍의 이유는 단 하나, 새로운 맛을 원하는 시장과 통했기 때문이다. 라면은 이제 궁핍했던, 그래서 배고픔을 없애는 게 최고의 미덕이었던 시절의 음식이 아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진 소비자들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게 아니라 새로운 맛을 찾았다. 짜파구리의 탄생 배경에는 맛에 대한 시장의 요구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시장의 요구는 때론 기적을 가져오기도 한다.
홋카이도(北海道) 아사히카와(旭川)에 가면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동물원 '아사히야마(旭山)'를 만날 수 있다. 면적은 서울대공원의 50분의1(15만㎡), 동물 종(種)은 3분의1(135종)밖에 안 되는 곳이다. 1995년에는 관람객 감소로 폐원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동물원은 지금 매년 300만명 이상이 찾는 일본 최고의 관광명소가 됐다.
이 동물원이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시의 지원이 있어서도, 희귀동물이 많아서도 아니다. 관람객이 원하는 동물원을 만들자는 직원들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동물원을 찾은 이는 수조 안 통로에서 마치 날아다니는 듯 헤엄치는 펭귄을 볼 수 있다. 북극곰이 먹이 사냥에 나서는 모습도 만난다. 전시된 동물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생태를 보는 것이다. "아사히야마에 가면 펭귄이 날아다닌다"는 소식에 도쿄에서, 유럽에서 관광객이 몰려왔다. 폐원 위기에 몰렸던 동물원은 이렇게 기적의 동물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창조경제가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각 연구소와 기업은 창조경제를 배우겠다고 난리다. 정부도 창조산업 생태계 조성, 벤처ㆍ창업 활성화 등의 캠페인성 구호를 목 터져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라면으로 치면 제품명은 결정했는데 어떤 맛으로 만들지 선택하지 못한 셈이다. 오죽하면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세 가지 중 하나가 창조경제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창조경제가 이렇게 된 것은 조급성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으니 무조건 이를 달성해야 한다는 성급함이 구체성과 현실성을 떨어뜨렸다. 기업이 지닌 창의성을 확대하기보다 새로운 것만을 요구하고 있다. 시장과 함께 하지 못하고 정부 혼자 무작정 뛰고 있는 꼴이다.
대기업과 중견기업ㆍ중소기업ㆍ벤처는 각자의 영역과 업에 맞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고객들이 즐겁게 방송을 보게 하려고 기업은 보다 편하고 아름답게 볼 수 있는 TV를 만든다. 벤처가 휘는 디스플레이를 개발하고 대기업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를 만든 것도 이를 위해서다. 시장의 요구가 기업으로 하여금 혁신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이렇게 기업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모자라는 것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과 기업들에 창조경제를 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딱 반만 맞는 말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 대상이 틀렸다. 생각을 바꿔야 하는 것은 국민과 기업이 아니라 정부다. 시장은 이미 창조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가 모호한 개념에 집착하지 않고 시장과 교감할 때 창조경제는 꽃을 피울 수 있다. 창조는 창조되는 게 아니라 현실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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