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2위이자 프랑스 최대은행인 BNP파리바의 펀드 환매중단 사태는 새로운 형태의 뱅크런(예금인출)의 위험성을 노출시킨 사건이다. 즉 금융시스템의 중심이 은행에서 증권으로 이동하면서 신용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것이다. 갖가지 형태의 증권상품에 대한 규제정책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뱅크런이 몰리면서 개별 은행이나 증권사가 순식간에 도산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종래의 뱅크런(Bank Run)과 다른 개념의 펀드런(Fund Run)이라는 용어를 개발, 사용하고 있다. 10일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플로이드 노리스는 ‘새로운 형태의 뱅크런이 낡은 규제를 시험하고 있다’는 칼럼을 통해 최근의 금융시스템이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금융은 주로 은행 예금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은행이 부실해져 뱅크런이 나타날 경우에도 중앙은행이나 개별 은행 단위에서 대출동결이라는 방식으로 적정한 선에서 조절이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 금융시스템이 증권에 투자하는 펀드라는 형태로 이동하면서 규제가 한층 어렵게 됐다. 심지어 누가 펀드의 실소유자인지, 언제 회수할 것인지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펀드투자자들은 거대 헤지펀드부터 개인적인 부자 등을 망라하고 있다. 이들이 증권에 투자하는 것은 그 대상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무디스나 스탠더드앤푸어스(S&P) 같은 신용평가회사들은 등급부여를 통해 이런 믿음을 보장해주고 있다. 높은 등급을 받은 증권은 비교적 낮은 금리를 지급해도 됐기 때문에 은행들마저 앞 다퉈 펀드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신용평가회사들이 펀드의 안정을 담보하지 못하면서 투자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졌다. 은행이 문을 닫을 위험이 있을 때 예금을 인출한 것과 비슷하다. 은행예금의 경우 어느 정도 회수가 보장되지만 펀드에는 이런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에 환매요구가 일시에 몰릴 수밖에 없게 되고 금융기관 자체의 파산으로 이어지게 된다. BNP파리바가 이런 새 형태의 뱅크런 전형을 보여줬다는 것이 노리스의 설명이다. BNP파리바는 22억달러 규모의 3개 자산유동화증권(ABS) 펀드에 대한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BNP바리바의 자회사인 BNP파리바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는 “자산 유동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 정확한 신용평가 없이 자산의 가치를 산정하기 어렵다”며 “파베스트 다이내믹 ABS, BNP파리바 ABS 유리보, BNP파리바 ABS 에오니아 등 3개 펀드의 가치산정과 환매를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BNP파리바는 시장의 유동성이 회복되는 대로 가치산정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한마디로 3개 펀드의 가치가 대부분 상실됐다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BNP파리바의 ABS에 투자가 몰린 것은 투자자들이 이 은행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은행도 신용경색 불안에 위협을 느낀 투자자들의 환매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없었다. BNP파리바의 펀드들은 미국 시장에서 높은 투자등급의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채권에만 투자해왔지만 서브프라임(비우량) 모기지 부실의 파문에 불안을 느끼고 쇄도하는 환매요구에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과거보다 훨씬 큰 형태의 자금지원이라는 방식으로 중앙은행이 개입할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노리스 칼럼니스트는 “예금이라는 형태로 은행을 중심에 둔 금융시스템은 이미 효용성을 잃었지만 중앙은행 등 규제당국은 다른 형태의 규제를 취하기를 주저하고 있다”며 “앞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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