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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과학과 종교의 경계


최근 과학계를 뜨겁게 달군 시조새 논란이 수그러들고 있다. 창조론 옹호단체인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교진추)는 지난해 12월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이 아니다"라며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해당 부분을 삭제해달라는 청원을 교육과학기술부에 냈고 교과부는 이 청원을 과학교과서 출판사에 전달했다. 이 가운데 6곳이 해당 부분을 수정ㆍ삭제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확대됐지만 교과부가 과학계의 의견을 들어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과학계 의견은 시조새가 진화론을 설명하는 근거로 적합하며 따라서 삭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려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마음 편히 이번 사안에 대해 살펴보자. 교진추의 청원은 미국에서 가끔 나오는 창조론ㆍ진화론 논란과 맥락이 비슷하다. 창조론자들은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라며 청원을 내거나 법원에 제소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회의 관심을 끌어낸다. 과학자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반박하는 것은 이들의 의도에 말려드는 일이다. 논란이 커질수록 일반인은 창조론과 진화론을 같은 차원으로 인식한다.

과학영역 침범하려는 종교계

교진추는 홈페이지에서 궁극적 활동 목표로 '교과서 진화론 삭제'를 내걸고 있다. 교진추가 창조론 옹호단체임을 감안하면 진화론 삭제 이후 삽입하려는 것은 창조론인 것 같다.

창조론에 따르면 오늘날 생명체의 기원은 노아의 방주에 올라탄 조상들이다. 여기에 합류했어야 마땅할 캥거루가 호주 외 다른 지역에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한 쌍의 캥거루는 서아시아 어디선가 방주에서 내린 뒤 호주까지 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자식을 낳았을 텐데 흔적이 없다. 그 먼 호주까지 바다를 건넌 방법도 궁금하기만 하다.

창조론으로 과학의 영역에 진입하려는 것은 이렇듯 창조론을 욕보이는 결과를 낳는다. 종교는 종교의 영역에서 종교의 사명을 다하면 된다. 과학의 영역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것은 옳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교황청은 태양이 지구를 돌도록 하기 위해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파문한 지 360년만인 지난 1992년 그에게 사과했다.

미국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의 책 '시대의 반석들'에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겹치치 않는 교도권(NOMA, non overlapping magisterium)'으로 제시했다. 종교는 궁극적인 의미와 도덕적 가치 문제를 포괄하며 과학은 우주가 무엇으로 이뤄져 있으며 왜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가를 다룬다. 이 두 교도권은 겹치지 않으며 따라서 충돌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종교가 최대한 취할 수 있는 자세는 여기까지다. 만약 과학의 교도권에 대해 개입하고 싶다면 과학의 방법으로 하면 된다. 시조새가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교진추처럼 교과부에 청원을 낼 게 아니라 네이처를 비롯한 과학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면 된다. 아직까지 진화론을 부정하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과학계는 이번 청원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교진추는 지난 3월 '말의 진화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라며 교과서에서 해당 부분을 삭제하라는 청원도 냈다. 교진추는 앞으로도 꾸준히 진화론과 관련된 내용의 삭제를 요청할 것이다.

교과서 내용 쉽게 바꿔서는 곤란

교진추 뒤에는 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있다. 그들은 진화론을 정설로 가르치는 현 과학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계는 이번 청원을 계기로 과학교육 전반을 되돌아봐야 한다. 당장 과학교육을 책임지는 교과부가 어떤 판단으로 청원 내용을 교과서 출판사에 전달했는지부터 추궁해야 된다. 청원을 내는 것만으로 교과서가 쉽게 달라져서는 곤란하다.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현하고 자기네 땅이라고 쓴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진화론을 창조론으로 대체하는 것은 이보다 훨씬 더 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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