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떨어진 집값에 깡통으로…
명품아파트도 깡통 속출10억 이상 아파트 잇따라 유찰낙찰금으로 대출금도 못 갚아
김상훈기자 ksh25th@sed.co.kr
L씨(53)는 2000년대 초반 사업이 잘 나갈 때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삶을 누렸다. 그는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를 분양 받아 2004년 입주했다. 스카이라운지와 연회장ㆍ수영장ㆍ헬스장 등 당시만 해도 일반아파트에선 보기 드문 커뮤니티 시설이 갖춰져 있는 고급아파트의 대명사다.
2008년 금융위기로 사업이 기울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집에는 압류딱지가 붙기 시작했고, 결국 지난해 만기가 돌아온 은행대출을 갚지 못해 집은 경매로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경매로도 그의 빚은 크게 줄지 않았다. 감정가 15억5,000만원인 집이 세 차례 유찰 끝에 7억9,3600만원까지 떨어진 것. 그가 은행에 갚아야 할 금액은 16억원 가량이다. 한때는 시세가 16억까지 가던 아파트임을 생각하니 L씨의 한숨은 깊어만 진다.
경매시장에 고급아파트들이 잇따라 유찰되면서 '명품아파트'마저 낙찰금액으로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깡통아파트'로 전락하고 있다.
21일 경매정보전문업체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올해 1ㆍ4분기 서울시내 감정가 10억원 이상 고급아파트의 평균 경매 낙찰가율은 72.0%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9.80%에 비해 8% 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금융위기 바로 직후인 2009년 1ㆍ4분기(70.13%)에 거의 근접한 수치다.
속사정을 보면 더 심각한 수준이다. 올 1ㆍ4분기에 경매시장에 등장한 10억원 이상 고급아파트는 총 321건으로 2009년(263건)보다 22% 증가했다.
반면 경매 1건당 입찰자 수는 4.5명으로 2009년 8.96명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경매시장에 나오는 고급아파트는 많아지는 반면, 찾는 사람은 절반으로 준 셈이다.
하유정 지지옥션 연구원은 "일반매물로 내놔도 안팔려서 경매에 나온 것을 감안하면 당분간 고급 주상복합이 경매시장에 더 많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더 문제인 것은 집값이 고점을 형성했을 때 이뤄진 담보대출이다. 잇따른 유찰로 낙찰가가 떨어지면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잠실동 롯데캐슬골드 166㎡(이하 전용면적 기준)는 감정가 19억원이었지만 지난 2월 11억50만원에 낙찰돼 1순위 근저당권자인 S은행의 대출 12억6,000만원에 못미쳤다. 후순위였던 또다른 S은행은 경매 과정에서 대출금 7억8,000만원을 한 푼도 회수하지 못했다.
지난 5월에 낙찰된 도곡동 아카데미스위트 164㎡도 3순위 근저당권자인 S저축은행은 대출금 5억4,600만원 중 7,300만원만 회수할 수 있었다.
심지어 감정가의 70%에 낙찰을 받았음에도 대출을 다 갚지 못한 사례도 있다. 지난 19일 서초아크로비스타 전용 174㎡는 감정가 20억원의 70%인 14억여원에 낙찰됐지만 2순위 근저당권자인 H은행은 12억7,000여만원 중 7,000만원만 경매로 회수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청담역지점장은 "2~3회 유찰되면 낙찰가가 감정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담보대출을 해준 은행들은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진다"며 "집값 하락에 따른 중산층 위기는 자칫 금융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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