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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송년회를 기다리며
입력2005-12-09 16:29:07
수정
2005.12.09 16:29:07
인간이 책력(冊曆)으로 기록하고 세월을 인식하게 된 시점이 언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 모르겠지만 한해의 마지막 달이 되면 아득한 기억처럼 메모된 책력을 보며 다시 한번 만감이 교차한다.
또 한해가 저물었구나(또 한살을 먹는구나) 하는 시간의 흐름과 아쉬움에서도 그렇지만 워낙 국내외적으로 크고 작은 사건과 이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다 보니 나 자신을 포함해 주변의 지인들이 올 한해도 무사히 보내는구나 하는 안도감에서 그렇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12월이 되면 모두의 몸과 마음은 공연히 더욱 바빠진다. 한해를 정리하는 국내외 10대 뉴스가 각 언론에서 발표되고 송년 음악회니 콘서트니 송년 특집이니 하는 이벤트도 빠지지 않는다.
자칫 '폭탄주 망년회' 되기 쉬워
구세군 냄비가 쩔렁거리며 등장하고 흰 눈이라도 펄펄 내리면 저물어가는 세모에 다시 한번 불우이웃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요청도 여전할 것이고 거기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거리에 울려퍼지면 한해의 끝이라는 것이 가슴 저리게 실감나기 시작한다.
그런 감정을 놓칠세라 유혹이라도 하듯 송년 세일과 감사 세일의 커다란 산타 할아버지 모형이나 현란한 전광판이 백화점마다 내걸리며 낮과 밤을 장식하는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한편, 책상 위의 탁상용 캘린더가 이런 저런 약속으로 빽빽하게 회칠되는 것도 이때쯤이다. 일단 한해 동안 동거동락했던 회사의 팀원들과 사업부 송년회의 스케줄이 잡히고 대학 동기들, 업계의 활동 모임, 작은 소모임들, 심지어는 같은 동네 이웃들까지도 일년 동안 소원했던 관계를 송년회로 대체하고 보상받고 싶어 한다.
그렇게 연이은 송년회에서 마주 잡은 손과 덕담의 여운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칼날 같은 새해를 맞이한다. 아마도 송년 모임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시간, 새해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마지막 마음 다지기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쨌든 미처 다하지 못한 한해의 정리(情理)를 마무리 한다는 점에서 송년회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송년회는 마치 망년회(忘年會)와 송구영신(送舊迎新)회, 전혀 다른 두 가지 모습으로 나눠지는 것 같은 느낌은 왜 일까.
어느 잡(job) 사이트가 최근에 조사한 나가고 싶지 않은 송년모임의 순서가 거래처, 회사(관련), 출신 학교 송년모임 순으로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이해관계가 많은 모임, 상하가 존재하는 모임, 관계만을 위한 모임, 형식적인 모임 등 흔히 ‘필참’이라는 송년회는 망년회로 전락하기 일수다. 차라리 누군가가 총대를 메고 ‘폭탄주’라도 몇 순배 돌려야 한해의 서운하고 엉클어진 감정이 해소되고 폭로되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너무 지나쳐 서로의 감정에 또 다른 상처를 입고 미처 봉합하지 못하고 깨진 망년회로 끝나게 된다. 또는 그날 모임의 수장이나 조직의 회장, 리더들의 특성이나 취미에 따라 일방적인 자랑과 진행에 모두가 박수를 치는 식으로 싱겁게 끝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없는 친한 친구들의 모임, 가족들끼리 잘 아는 이웃들의 모임, 같은 생각을 가진 시 낭송회 모임, 시골 불알친구들이나 가까운 친지들의 모임은 정말 한해 동안 미처 서로를 돌아볼 시간 없이 말로만 전하던 안부를 다시 나누고 서로의 어려움들을 들어주며 다가올 새해에 새로운 각오를 얻거나 영감을 주기도 한다.
오는 14일에 특별한 송년모임 하나가 나를 설레게 하고 있다. 지난 82년 11월17일에 제대를 했으니까 만 23년 만에 군대 친구들의 송년모임 연락이다. 지금 통일전망대 부근 민통선을 커버했던, 가장 북단에 있던 포병대대의 본포 통신병이었던 나는 대학 생활에서 만나기 힘든 다양한 전우들을 군대에서 만났다.
손재주가 뛰어났던 최 병장, 전봇대를 다람쥐처럼 타던 윤 병장, 머리가 비상해 음어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포상 휴가로 애인을 만나게 됐다고 밤잠을 설치던 이 병장은 나와 군번이 전후인 막사 동기들이고, 연락을 해온 교환병 손 일병, 가설병 김 상병, 정 일병, 박 일병, CW병이었던 고참 김 병장, 무선병이었던 오 상병, 천 병장 등….
한해정리·새각오 다지는 기회로
갑자기 그 혈기 왕성했던 젊은 날의 군 생활이 주마간산처럼 지나갔다. 철모가 날아가던 아리랑고개 바람이나 모포를 12장씩 덮고 자던 GOP 관측소의 추위, 무장공비가 나타나 일주일 동안 꼼짝도 못하고 매복을 했던 일, 눈이 1m 이상 내려 밤새도록 포차가 나갈 길을 뚫느라 눈을 쓸던 일(지금도 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2월 동계훈련을 마치고 뒷산 계곡에서 얼음을 깨고 영하 15도가 더 내려가는 추위에 알몸으로 냉수마찰을 하던 일….
어렵게 수소문해서 연락해준 손 일병의 이야기로는 우리 군번 전후로 열명 내외의 전우들이 제대 후에도 가끔씩 만나고 서로 경조사를 챙겨주며, 인생의 벗이 돼 있다고 한다. 올 한해 송구영신하며 새로운 각오와 영감을 줄 반가운 모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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