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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서 '차이코프스키' 공연 한국 국립발레단 박수갈채


장면을 떠올리면 눈보다 귀로 선율이 먼저 들려오는 작품들이 있다. 발레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바로 그런 존재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보여줬던 차이코프스키가 이번에 한국 무용수들의 몸을 통해 자신의 고국 러시아의 무대에 올랐다. 국립발레단이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의 초청으로 지난 26일(현지 시각)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가에 위치한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1,000여명의 러시아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에이프만이 안무한 '차이코프스키'를 선보였다. 국내에선 지난 해 첫 선을 보인 작품이다. 막이 오르자 비 내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위대한 작곡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무대 위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작품 속 캐릭터가 현실과 혼재돼 그와 함께 헤맨다. 그의 구원은 백조가 상징하는 그의 음악뿐이다. '검은 새'로 상징되는 현실은 백조를 쫓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젊은 작곡가는 창작의 결과물인 '왕자'를 지켜내려 한다. 차이코프스키는 음악적인 환상과 실제 현실의 삶 사이에서 치열하게 싸운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유망한 예술가인 동시에 창작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던 고독한 인간 차이코프스키. 분열된 두 개의 자아로 존재한 그가 누구보다 외롭고 쓸쓸한 예술가였다는 점을 직시한 발레 '차이코프스키'는 모던 발레의 정수와 클래식 발레의 매력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동성애로 인한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둘러싸고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는 그의 미스터리한 삶과 죽음은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를 통해 새 생명을 얻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자아가 두 개로 나뉘어 서로를 강하게 부여잡고 반대로 거칠게 밀어내는 남성 2인무는 인상적이다. 교향곡 제5번, 현을 위한 세레나데, 교향곡 제6번 B단조 '비창' 4악장 등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발레와 함께 할 때 비로소 극대화되는 발레의 백미로 손색 없다. 이번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연은 국립발레단 최초로 세계 발레의 중심인 러시아에서 개런티를 받고 이뤄졌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김현웅(차이코프스키), 이동훈(차이코프스키 내면), 정영재(왕자), 김지영(차이코프스키 부인) 등 주역 무용수를 비롯한 34명의 단원들이 실수 한 번 없이 큰 무대를 성황리에 마친 점도 의미가 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마리나 슈물리비치(50) 씨는 "러시아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를 너무도 잘 이해하고 표현한 것 같아 감동받았다"며 "상트페테르부르크 관객들의 문화 수준이 무척 높은 편인데 관객들을 이토록 감동시킨 것은 한국 발레단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은 "한국 발레가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한지 10여년 밖에 안됐는데 세계 발레의 중심인 러시아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치른 것은 한국 발레가 세계화의 첫걸음을 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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