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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시장 개척 급한데…" 경영공백 장기화 우려

■ 김원홍 없는 SK판결… 최태원 SK회장 징역 4년·최재원 법정구속<br>고법, 최재원 1심 무죄 판결 뒤집어<br>총수 형제 나란히 유죄… 그룹 충격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도 4년을 선고 받았다. 반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던 최재원 SK그룹 부회장은 징역 3년 6월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특히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원홍 전 SK 고문에 대한 증인신문 없이 SK그룹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회장과 부회장을 모두 구속시킴에 따라 글로벌 신시장 개척 등 그룹의 경영차질이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서울고법 형사4부(문용선 부장판사)는 27일 개인 용도의 펀드를 조성하며 출자금을 선지급할 것을 그룹 계열사에 지시하고 그 자금 중 46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최 회장 형제에 이 같은 형량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건에 등장하는 펀드 대부분은 투자손실을 기록하거나 수수료만 지급한 채 그대로 해체됐고 그에 따른 주주 등 다수 이해관계자의 손해가 막심하다"며 "김원홍에 송금된 450억원이 추후 최씨 형제에 의해 반환됐다 하더라도 이 범행으로 인한 피해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 어렵기에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사유를 밝혔다.

1심에서 횡령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은 최 부회장에 대한 판단은 완전히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사건 실체에 대해 내린 결론은 1심과는 사뭇 다르다.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개인 투자금 마련을 위해 펀드를 조성하고 계열사에 출자를 지시하고 횡령을 공모하는 등 범행 일체를 주도했고 최 부회장은 관여한 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과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전 대표의 증언, 김 전 고문의 녹취록 등을 통해 해당 펀드의 조성이 최 부회장과 김 전 고문의 투자금 마련을 위해 이뤄진 것이라고 봤다. 1심 재판 당시 최 부회장이 "자신이 주도했다"고 자백한 내용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최재원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구체적인 사실을 합리적이고 일관성 있게 진술하고 있다"며 "1심 재판부는 최재원이 형인 최태원 회장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기 위해 허위 자백하고 있다고 판단했지만 정말 무고한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자백을 하기 어렵고 내용도 다른 증거들과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최 부회장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차명 주식을 베넥스 펀드에 고가 매수하게 해 180억원을 취득한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1심과 달리 유죄를 선고 받았다.

최 회장 측 변호인이 26일 대만에서 송환된 김 전 고문을 증인신문해야 한다며 낸 재판재개 요청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 회장 측은 김 전 고문이 자신의 자금마련을 위해 펀드 조성부터 계열사 출자금 지시, 횡령 공모까지 모든 부분에 관여하며 자신들을 기망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굳이 김 전 고문을 증인신문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재판부는 "제출된 녹취록 등을 통해 나타난 김씨의 인간됨, 진술의 합리성 등을 볼 때 전혀 믿을 수 없어 피고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탄핵증거로서 가치가 하나도 없다"며 "이 사실은 김씨가 직접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으며 그렇기에 김씨의 증인심문을 위해 재판을 재개하는 것은 무의미한 절차"라고 단언했다.

이 같은 재판부의 판단이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김 전 고문에 대한 증인심문이 없었다는 사실이 '심리미진'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날 최 부회장은 법정구속되기 직전 "나 역시 뒤늦게야 횡령이 있었던 사실을 알았고 그 범행에 관여한 바가 없다. 이런 판결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전 고문 송환으로 반전을 기대했던 SK그룹은 법원 판결 이후 충격에 휩싸였다. 최 회장과 최 부회장 등 '형제 동시 유죄'라는 판결에 대해 재계 역시 재판부가 진실 규명을 위한 SK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최 회장이 구속 수감된 지 어느덧 8개월. 그간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를 통해 오너의 경영공백을 최소화해 오고 있지만 한계가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최 회장이 손수 주도해온 '글로벌 신시장 개척'이 사실상 올스톱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오너가 나서서 추진력 있게 신시장을 개척하고 신사업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하지만 현재 SK그룹의 경우 오너 경영부재로 인해 이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같은 오너 경영 공백의 여파가 당장의 경영실적보다 장기적으로 닥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사실상 최 회장 구속 이후 8개월째 신시장 개척이 멈춘 상태. 앞으로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신수종 사업이 그려지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7년 만에 결실을 본 중국 우한 프로젝트 역시 최 회장이 중점 추진했던 사업이다. 그나마도 최 회장의 부재로 6개월가량 추진이 미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SK는 이날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중심으로 긴급 고위급 임원회의를 갖고 향후 대응방안 등에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판결에 따른 후속 대응방안 등을 논의했지만 오너 경영권 부재 장기화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SK그룹의 앞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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